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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권율(權慄) 묘

권율(1537년~1599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이어가던 중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한양이 함락된 후전라도순찰사 이광과 방어사 곽영이 군사를모집할 때 광주목사로서 합류해 북진하다가용인에서 일본군과 만나 싸웠으나 대패했다그 이후 다시 군사를 모아 금산군 이치에서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정예부대와 싸웠는데그들을 대파해 전라도순찰사로 승진하였다수원 독성산성에서 우키타 히데이에의부대를 격파했으며 부대를 나누어 선거이에게시흥 금주산에 진을 치게 한 후 약 3천 명의병사를 이끌고 한강 건너 행주산성에 주둔하며3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온 고바야카와의부대와 격전을 벌여 대승을 이끌어냈다이러한 전공으로 도원수에 올랐으며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일본군과 맞서싸웠으나 명나라 장수들의 비협조적인태도로 크게 싸우지 못하고 퇴..

경기도 2024.04.15

양주 백숙양 묘 (현상윤 부인)

현상윤(1893년~1950년)1914년 일본 와세다대학을 입학해1918년 졸업하고 귀국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교사로 부임하여 교육자로 활동하였다3.1운동 당시 송진우, 최린, 최남선 등과중앙학교 숙직실에서 거사를 도모하고기독교와 천도교가 참여하는 과정에서중요한 역할을 하며 민족대표로서 서명하려고했으나 어린 사람은 보호해야한다는주장으로 서명하지 않고 주모자 48인으로분류되어 체포되고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그 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내고재단법인 중앙학원 이사, 조선물산장려회 이사등을 지내다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임전보국단 발기인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친일 강연, 친일 글 등을 기고하였다해방 후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던 중고려대학교로 인가되면서 초대 총장이 되었다그러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사망했다

경기도 2024.04.14

서울현충원 - 권준(權晙) 묘

권준 (1895년~1959년) 의열단이 창단 될 당시 참여하고 종로경찰서·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 의거 등 의열단의 활동 때 자금 조달 활동을 하다 국내에서 잡혀 옥고를 치렀다 황푸군관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조선의용대의 비서장으로 활동하다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차장이 되었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자 육군 대령으로 특채되어 제106여단장, 초대 수도경비사령관, 제103사단장, 서부지구경비사령관 등을 지내고 육군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3

서울현충원 - 조경환(曺京煥) 묘

조경환 (1876년~1909년) 1907년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 의병진의 좌익장이 되었으며 함평, 장성, 영광 등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며 성과를 올리고 '호남창의대장'이라 칭하며 각 지역의 향교에 독립을 호소하는 격문을 발송하였다 그 후에도 일본군과 싸워 성과를 올리던 중 광주군 소지면 어등산에서 격전 중 전사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2

서울현충원 - 신돌석(申乭石) 묘

신돌석 (1878년~1908년) 1895년 을미의병이 봉기하자 19세의 어린 나이로 의병을 이끌고 거사했으며 1905년 을사의병이 봉기하자 사람을 모아 다시 의병운동을 재개하였다 1907년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전국에서 의병들이 양주로 모여 13도창의군이 결성될 당시에 신돌석은 경상도 의병을 대표해 1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올라왔으나 그가 평민의병장이라는 이유로 참여시키지 않아 결국 경상도로 다시 돌아와 따로 의병 운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겨울이 되고 봄을 기약하며 부하 집에 은신하고 있었지만 이들 형제의 배신으로 인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1

서울현충원 - 나인협(羅仁協) 묘

나인협 (1872년~1951년) 1894년 나용환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으며 그 후 천도교 도사가 되었다 1919년 손병희, 권동진 등에게 3.1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민족대표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으며 3.1운동 당일에 민족대표로서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서 낭독식에 참여하고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그 후로는 천도교 도사로서 활동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0

서울현충원 - 박승환(朴昇煥) 묘

박승환 (1869년~1907년) 대한제국 육군 참령으로 복무하던 중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 황제를 강제로 양위시켜려 하자 거사하여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황제에게 해가 끼칠 것을 염려하여 거사하지 못하였다 대한제국군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이 되었고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 해산 통고를 위해 새벽에 대대장 이상의 장교를 통감 관저로 불렀으나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으며 결국 군대 해산식을 강행하자 분개하며 대대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다음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를 본 장병들은 분개하며 탄약고를 부수고 무장 봉기하여 일본과 전투를 벌였으며 상당수의 군인이 의병으로 전환되어 의병 운동이 강화되는 기틀을 만들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