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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신채호(申采浩) / 박자혜(朴慈惠) 묘

신채호(1880년~1936년)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리며 26세의 나이로성균관 박사를 지냈고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등에 논설을 쓰며 민중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양기탁, 안창호 등과 함께 신민회에 가입하여활동했으며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해 광복회,동제사 등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수립되자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으며 1922년의열단장 김원봉의 부탁으로 을집필, 발표하였다. 또한 일생에 걸쳐 역사를공부하며 를 집필하고 광개토대왕릉을답사하는 등 특히 부여, 고구려, 발해 역사를연구했다. 1928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징역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에서 복역하다가결국 그곳에서 뇌일혈로 순국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박자혜(1895년~1943년)본래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3.1운동 당시 부상..

충청북도 2026.07.10

청주 금성대군(錦城大君) 묘

금성대군 이유(1426년~1457년)조선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로세종의 6남이 되며 문종, 세조, 안평대군,임영대군, 광평대군의 동생이자 평원대군,영응대군의 친형이다. 세종과 문종이 궁궐을비울때면 금성대군에게 단종을 맡겼다고 전해질만큼 단종과 가장 가까운 왕족이었다. 단종이즉위하자 왕을 보필했지만 친형 수양대군이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을 위협하자 친형에게반기를 들었다. 결국 유배되었고 사육신 사건이후에 순흥으로 이배되었으며 그곳에서 단종복위 운동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결국 반역죄로처형당했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완산부부인 전주 최씨전주 최씨 최사강의 딸로금성대군과의 사이에서 1남을 두었다

충청북도 2026.06.23

청주 안평대군(安平大君) 묘

안평대군 이용(1418년~1453년)조선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로세종의 3남이 되며 문종, 세조의 동생이자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영응대군의 친형이다. 어려서부터 서예, 시문,그림 등 예술에 뛰어났으며 명나라 사신이 오면글을 써달라고 간청했을 정도였다고 한다집현전 학자들과 고명대신들과도 교류하여단종 때 형인 수양대군과 함께 강력한 종친으로평가받았으나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무고로인하여 강화도를 거쳐 교동도로 유배되었고그곳에서 사사당했다. 시호는 장소(章昭)이다 부부인 연일 정씨연일 정씨 정연의 딸로안평대군과의 사이에서 2남을 두었다

충청북도 2026.06.03

증평 김치(金緻) 묘

김치(1577년~1625년)본래 김시회의 아들이지만 훗날 영의정에 증직된충무공 김시민의 양자로 출계하였다. 선조 때관직에 나가 광해군 때 동부승지, 대사간, 부제학등을 역임하였으며 주로 이이첨의 심복으로활동하다가 광해군의 학정이 점점 심해지자관직에서 물러났다. 인조반정 당시 심기원과사전에 내통하여 다시 정계로 나갈 수 있었으며동래부사를 거쳐서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충청북도 2026.05.28

증평 신경행(辛景行) 묘

신경행(1547년~1623년)문과에 급제하고 한산군수, 공주목사, 남원부사등을 거쳐 충청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592년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호서지방에서크게 활약하여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충청도관찰사 종사관으로 일할 때 이몽학의 난이일어나자 그 반란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으며청난공신에 책록되고 영성군에 봉해지게 되었다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광해군이 즉위하고폐모론 등 정치가 혼탁하자 낙향하여 당대의문인들과 교유하면서 후학에 힘썼다. 훗날예조판서에 증직되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충청북도 2026.05.14

증평 양무공사 [황희석 사당]

양무공사양무공 황희석을 모신 불천지위 사당으로1595년에 세워졌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 반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황희석(?~1394년)우왕 때 왜구가 명량에 침입하여 전라도가소란스러워지자 체복사로 파견되어 민심을수습하였다. 청주상만호로 임명되고 요심의적이 단주에 침입하자 육려, 이지란 등과 함께이를 격퇴하였다. 요동 정벌 당시 이성계 휘하로참여했다가 회군때도 뜻을 함께하여 성공 후동지밀직사사에 봉해졌다. 정몽주 일파를몰아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공을 인정받아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평해군에 봉해졌다상의중추원사, 지중추원사 등을 지냈으며질병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태조는국의를 보내 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사후문하시랑찬성사에 추증되고 시호는 양무이다

충청북도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