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27

남양주 이해선(李海善) 묘

이해선 (1905년~1983년) 완순군의 손자로 이달용의 아들이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카메라를 통해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36년 경성아마추어사진가구락부를 창립하며 본격적인 사진가 활동에 들어갔다 광복 후에도 조선사진연구회 지도위원, 한국사진협회 고문 등을 지내고 개인전을 열며 현대사진문화상을 수상했다 말년에는 대한사진협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경기도 2024.03.03

남양주 이해영(李海英) 묘

이해영 (1925년~1979년) 완순군의 손자로 이달용의 아들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인구통계학을 접하고 관심을 가져 귀국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인구연구소를 설립하여 12년 동안 인구학 분야를 개척하였다 서울대학교 교무처장, 문리과대학의 학장을 지내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인구정책 분야에 큰 기여를 하였다

경기도 2024.03.02

남양주 완순군(完順君) 묘

완순군 (1856년~1922년) 본래 선조의 아들 경창군의 후손으로 9대 종손 이신오의 아들이었으나 흥완군의 양자가 되어 고종과 4촌이 되었다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한성은행 은행장이 되고 궁내부대신, 종정원경 등을 지냈다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자 4대손에 해당되어 완순군에 봉해지고 보빙대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육군 부장이 되었다 대한제국을 방문한 요시히토 황태자를 순종, 영친왕 등과 함께 맞이하였다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조선귀족 후작에 봉해졌으며 은사공채 336.000엔을 받았다 중추원 찬의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했고 죽을때 경술국치에 대한 수치심으로 자신의 묘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 유언했다

경기도 2024.02.29

남양주 엄준원(嚴俊源) 묘

엄준원 (1855년~1938년) 엄진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엄진삼의 양자로 출계하여 양아들이 되고 순헌황귀비 엄씨의 동생이 된다 대한제국 시절 군부협판, 원수부 기록 총국장, 헌병 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순헌황귀비에게 조금의 내탕금을 얻어 진명여학교를 설립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진명여학교를 운영하며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사망할 때까지 연임하며 재직했고 그 밖에도 조선박람회 평의원, 조선나병예방협회 회원 등을 지내 훗날 친일반민족행위자에 규정되었다

경기도 2024.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