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98

서울 유석창(劉錫昶) 묘

유석창호는 상허(常虛). 어린 시절 아버지가만주로 이주하자 아버지를 도와 독립운동에가담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귀국했으며경성의학전문학교을 졸업해 병원을 개설했고이는 민중병원이라는 이름을 거쳐 현재의건국대학교 병원으로 이어진다. 해방 당시의학 박사가 되었고 낙원동에 건국의숙을설립했으며 이것이 건국대학교로 승격함에따라 건국대학교의 초대 총장이 되었다

서울 휘경원 터

휘경원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수빈 박씨의 무덤으로 수빈 박씨가사망하자 당시 영우원이 있던 배봉산아래에 무덤을 조성했다가 1863년에남양주시로 이장했고 빈 터로 남게 됐다1907년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가사망하자 휘경원 자리에 장사지내며휘경원의 명칭을 계속 이어오게 됐다하지만 경빈 김씨의 묘도 해방 후에개발로 인해 서삼릉으로 이장되면서무덤이 있던 곳은 없어졌고 그 자리에중학교가 들어왔다. 현재 이러한 역사를알려주는 흔적은 '휘경동'이라는 지명이 있다

서울 화신백화점 터

화신백화점일제강점기에 생긴 최초이자 유일한민족 자본 백화점으로 화신그룹을설립한 박흥식이 사장이었다. 1935년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다시 건축했으며지하 1층, 지상 6층에 에스컬레이터와엘레베이터가 있고 옥상에는 일루미네이션이설치되었다. 광복 이후 한동안 존속했으나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화신그룹이 흔들리고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등에 밀리면서결국 부도가 났으며 결국 1987년 철거되어그 자리에는 종로타워가 완공되게 되었다

서울 삼일독립선언유적지

삼일독립선언유적지1919년 3월 1일 종교계 지도자로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태화관에서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3.1운동이시작되었다. 3.1운동은 서울을 시작으로지방으로 뻗어나갔으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확산되었다. 현재 태화관이 있던자리에는 빌딩이 들어서 그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후세에 조형물을 설치하여3.1운동의 시작점인 이곳을 기억하고 있다

서울 순화궁 터

순화궁일설에는 조선 중종이 딸인 순화공주를위해 지어주었기에 순화궁이라고 불렸다고하지만 중종에겐 순화공주라는 딸은없었기에 이 유래에 신빙성은 크게 없다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사저로서경빈 김씨의 사당 역할을 하다 이완용에게넘어갔으며 순화궁은 명월관의 분점인태화관이 되었다. 이곳에서 3.1운동 당시민족대표 33인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서울 죽동궁 터

죽동궁순조의 장녀인 명온공주와 그녀의부마인 동녕위 김현근이 살던 집으로김현근이 병에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하기위해 무당들이 대나무칼춤을 췄고 다행히병이 완치되어 '죽도궁'이라고 불리게 됐다훗날 죽동궁이라고 바뀌어 불리게 됐고김현근의 손자인 김덕규가 거주하다가명성황후의 오빠인 민승호에게 하사되었고민승호가 암살당한 후에는 양자인 민영익이소유하게 되었으나 그의 사후 소유권 분쟁이벌어지게 되었고 민영휘 일가, 일본인 등주인이 바뀌었다. 현재는 빌딩이 들어섰으며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는다

서울 사동궁 터

사동궁고종 황제의 5남인 의친왕 이강이살던 집으로 의친왕부가 있던 곳이다경술국치 이후 의친왕이 조선왕공족사동궁 궁주로서 '이강 공'에 봉해지고운현궁과 함께 양관이 세워지며 매우넓은 규모를 자랑했다. 1930년 의친왕이일제에 의해 '공'의 작위에서 물러나자그의 아들인 이건이 '이건 공'에 봉해졌고그에 따라 '이강공저'라고 불리던 사동궁은'이건공저'로 불리게 되었다. 해방 후황실 재산을 몰수할거라는 소문에 의해헐값에 부지를 팔게되었고 사동궁은해체되어 여러 부지로 쪼개지게 되었다양관은 예식장으로 사용되다가 화재로없어졌고 다른 한옥들도 없어지게 되었다의친왕 등 사동궁 사람들은 안국동 별궁,성북동 별서, 운현궁 등으로 흩어지게되었고 남아있던 사동궁의 건물들도2004~2005년에 최종적으로 철거되며사동궁 터는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