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공원 38

남양주 최종길(崔鐘吉) 묘

최종길(1931년~1973년)서울대학교 법대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가르치던 중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유신반대 데모에 나서 체포되자 스승으로서모른 채해서는 안된다며 총장을 박정희대통령에게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한다고 발언했다. 한편 중앙정보부에서유렵 간첩단 사건의 수사 협조를 요청하자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던 동생 최종선과함께 자진출두했으나 3일 뒤에 변사체로발견되었는데 중앙정보부는 최 교수가본인이 유럽 간첩단 소속임을 고백하고중정 본부 7층에서 투신자살했다고 했다훗날 진상규명을 통해 최종길 교수는고문과 협박에도 끝까지 자백 강요를부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경기도 2024.10.29

남양주 조영래(趙英來) 묘

조영래(1947년~1990년)경기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주동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고 이후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한일회담비준 반대 시위, 6.8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앞장섰다. 1970년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이분신 자살하자 그의 죽음을 사회에 알리는역할을 했으며 추도식에 사용되는 시국선언문을 초안하였다. 사법시험 합격 후사법연수원에서 생활하다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고 징역을선고받으며 복역하였다. 1974년 민청학련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수배되었고사면 복권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 활동 당시 '서울망원동 수재사건 집단소송', '이경숙 사건','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소송 사건' 등 노동, 여성, 환경에 관련된사건을 맡으며 ..

경기도 2024.10.28

남양주 문송면(文松勉) 묘

문송면(1971년~1988년)중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 서울 영등포구양평동에 있던 협성계공의 온도계 공장에입사하여 근무하다 몸이 이상함을 느끼고휴직계를 제출하고 집으로 와 요양했으나결국 병원에 입원했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수은 중독 및 유기용제 중독 추정 진단을받아 치료 도중 이물질이 기도에 막혀질식사하였다. 초기 가족들은 이 일을산업재해로 신청하려 했으나 노동부에서계속 반려하다 사망 2주 전에야 인정했고사망자가 너무 어린나이에 사망했다는사실 또한 사회적 물의, 반향을 일으켰다

경기도 2024.10.27

남양주 전국광(全國光) 묘

전국광(1946년~1990년)조각가 박재소를 만나 조각을 처음배웠으며 뛰어난 솜씨로 각종 대회에서대상을 수상한다. 전국광의 작품성과작가 정신에 반한 이병철 삼성회장이직접 수유리 작업실에 방문하여 그의작품을 구입할 정도로 인정받게 된다대학교 교수로 발령받았으나 1년 만에사표를 제출했고 남양주군 화도면녹촌리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품에몰입할 무렵 가족들과 물놀이를 갔다가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경기도 2024.10.26

남양주 김경숙(金景淑) 묘

김경숙(1958년~1979년)1976년 YH무역에 입사하여 일했으나회사의 부당한 폐업 조치가 내려지자공장 점거 농성을 이어갔고 회사의정상화를 요구하며 신민당 당사에서점거 농성을 시작하였는데 요구하는건폐업 철회, 노동자 생존권 보장이었다하지만 일명 '101호 작전'으로 1200명의경찰기동대가 당사를 습격했고 농성을강제 해산시켰는데 진압 종료 후 확인해보니 김경숙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경찰은 김경숙이 부대 투입 30분 전에손목의 동맥을 끊고 투신 자살했다고발표했으나 2008년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발표한 결과왼쪽 손목 상처는 자해가 아니고 경찰의폭력을 피하는 과정에서 추락한 것으로추락 전 후두정부에 치명적인 가격을당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경기도 2024.10.25

남양주 홍세화(洪世和) 묘

홍세화(1947년~2024년)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입학하여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교련 반대 투쟁에참여했고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되었으며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 들어가 파리에서일하게 되었는데 남민전 사건이 터지고이것에 연루되어 프랑스에 망명 신청을하게 되었고 약 20년간 망명 생활을 하였다2002년 영구 귀국하여 한겨례신문에서 기획,편집위원으로 일했고 진보신당이 창당되자공동대표를 지냈으며 벌금형을 선고 받고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을구제하기 위해 사회단체 '장발장 은행'을설립하고 이곳의 은행장으로 활동했다일명 '흰머리의 척탄병'으로 불렸다

경기도 2024.10.24

남양주 박정기 / 정차순 묘

박정기(1928년~2018년)부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며정차순과 혼인했고 2남 1녀를 두었다그러나 1987년 막내아들 박종철이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 도중숨지자 아들의 사망 진상 규명을위해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여러 단체에서 활동하고 공권력에의해 피해를 입거나 희생당한 이들을위해 민주화, 사회 운동에 투신했다 정차순(1933년~2024년)1956년 박정기와 혼인하여 2남 1녀를두었으나 1987년 막내아들 박종철이고문 도중 숨지자 남편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유가협 회장을 맡아바쁜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가정을 지켰다

경기도 2024.10.23

남양주 박종철(朴鍾哲) 묘

박종철(1965년~1987년)박정기와 정차순의 막내로 태어났으며1984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했다입학 후 비공개 운동 조직에 가입해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4.19 혁명 기념식 시위,서울대 프락치 사건 당시 시험 거부 운동,서울 미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지지 가두투쟁 등에 참여하였으며 3학년에 과 학생회장에 당선되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했다1986년 청계피복노동조합 합법성 쟁취대회가두시위에 참여했다가 징역 10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으나 1987년 대공분실수사관에게 연행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지도위원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운의 행방을추궁당하며 폭행,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당했고 결국 물고문 도중 사망하였다

경기도 2024.10.22

남양주 박원순(朴元淳) 묘

박원순(1955년~2020년)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데모를 하다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되며 제적되었다그 후 사법시험을 공부하여 1980년 합격하고대구지방검찰청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나1년만에 사람 집어 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않는다는 이유로 사표를 제출해 퇴임했다이후 사법연수원 동기인 조영래 변호사와함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선진적인시민운동이 뿌리내리게 한 주역이 되었다대표적인 사건으론 부천서 성고문 사건,미국 문화원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변론을 맡았다시민단체 '참여연대'의 설립을 주도했으며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낙천.낙선운동 등을 이끌었고 2000년에는 사회적기업 집단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했다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해 상임이사로 일했으며 2011년 당시 오세훈..

경기도 2024.10.21

남양주 문동환(文東煥) 묘

문동환(1921년~2019년)민주화운동가이자 목사인 문익환의동생으로 조선신학교를 졸업한 후미국에 있는 신학원에서 종교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와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 교수가 되었다그 후 종교 활동을 하면서 사회 활동에도나섰고 그러다 결국 교수직에서 해직당했으나 1976년 명동성당에서 '3.1민주 구국 선언문'을 참여한 혐의로투옥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 조사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자 위원장직을 맡았다

경기도 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