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순국선열묘역 24

서울 이용문(李龍文) 묘

이용문 (1916년~1953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군인으로 당시 참모본부인 대본영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데 이곳에서 근무한 일본 육사 출신 조선인은 홍사익과 이용문 둘 뿐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에 들어갔고 6.25 전쟁 당시 제9사단 부사단장으로 현리 전투를 펼쳤으며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이 되었다 부산정치파동 당시 이종찬 참모총장과 함께 군의 중립을 내세우며 병력 차출을 거부했으며 이로 인해 수도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그 후 남부지구 경비사령관이 되어 공비 토벌 임무를 수행하다 전북 남원 상공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졌으며 묘는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 의장의 주도 하에 수유리로 이장하였다

서울 손병희(孫秉熙) 묘

손병희 (1861년~1922년) 동학농민운동 제2차 봉시 당시 북접의 지휘관으로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전투에 임했으나 우금치에서 패배하고 동학 교주 최시형이 처형당하자 교주의 직위를 이어 받았다 일본 망명 시절 이용구에게 명령해 진보회를 만들어 자신의 뜻을 실행하게 했는데 일진회와 합쳐지며 완벽한 친일파가 되자 이용구와 분리했으며 동학을 천도교라는 명칭으로 개칭한다 그 후 보성전문학교, 동덕여자의숙 등을 인수해 교주가 되는 등 교육 사업에 힘썼고 1919년 천도교의 대표로서 3.1운동을 주도했으며 기미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 결국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서울 엄상섭(嚴詳燮) 묘

엄상섭 (1907년~1960년) 일제강점기 당시 광주지방법원검사국과 함흥지방법원검사국 검사를 지내는 등 사법계 친일 행적이 있다 해방 후 서울지방검찰청, 대검찰청 검사를 지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제2공화국 헌법기초위원장을 지내던 중 갑작스레 사망하였다 (엄상섭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반성하는 행보를 보여 대표적인 친일 행적 반성 사례로 꼽힌다)

서울 현제명(玄濟明) 묘

현제명 (1903년~1960년) 연희전문학교에 음악 강사로 부임하고 미국 시카고음악연구원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나 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된 후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지지하는 노래를 작곡하고 친일 단체에 가입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초대 학장을 지냈으며 한국음악가협회를 창립하였다 (예전에 현제명의 를 좋아했었는데... 물론 이제는 아니다)

서울 신숙(申肅) 묘

신숙 (1885년~1967년) 천도교에 들어가 활동하였으며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교정하고 지방에 배포하였다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되자 부의장에 선출되었으며 한국독립군 참모장을 지내다가 일본에 체포되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해방 후 동북한인교민회 총회장으로 재만동포의 귀환을 책임지기도 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 김도연(金度演) 묘

김도연 (1894년~1967년) 일본 유학 중 2.8 독립선언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수감되었으며 후에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체포되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 수립 후 초대 재무부장관에 임명되었고 제4대 국회부의장으로 활동하였으며 4.19혁명 직후 국무총리로 지명되었으나 국회 인준투표에서 부결되었다 제헌국회의원부터 총 6선의원을 지냈다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