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일독립선언유적지 삼일독립선언유적지1919년 3월 1일 종교계 지도자로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태화관에서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3.1운동이시작되었다. 3.1운동은 서울을 시작으로지방으로 뻗어나갔으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확산되었다. 현재 태화관이 있던자리에는 빌딩이 들어서 그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후세에 조형물을 설치하여3.1운동의 시작점인 이곳을 기억하고 있다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도 2024.12.20
서울현충원 - 이갑성(李甲成) 묘 이갑성(1889년~1981년)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고최연소자로서 청년층을 대표하여 3.1운동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출옥 후 YMCA 이사로서 청년들을 지도했고신간회 사건의 여파로 상해로 망명했으나귀국 후에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체포되었다해방 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으로 활동했고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광복회장,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재 등을 지내며 원로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다 3.1기념행사에참석 도중 사망하였는데 민족대표 33인의마지막 생존자로 삼일동지회 고문을 지냈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9.26
서울현충원 - 이종훈(李鍾勳) 묘 이종훈(1856년~1931년)동학에 입교하여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고교주 최시형이 교수형 당하자 옥리를 매수해몰래 시체를 빼내어 광주에서 장례를 치렀다1919년 고종의 국장을 위해 상경했다가손병희, 오세창 등을 만나 3.1운동에 대한계획을 듣고 참여하는데 동의하였으며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서 태화관에서만세 삼창을 외치고 경찰에게 체포되었다출옥 후에도 천도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6
서울현충원 - 이필주(李弼柱) 묘 이필주(1869년~1942년)대한제국군에 들어가 장교로 근무하다군대가 해산되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정동교회에서 목자생활을 이어가던 중이승훈, 이갑성 등을 만나 3.1운동에 대한계획을 듣고 민족대표로서 참여하기로 했다3.1운동 당일 태화관에서 만세삼창을 하고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 해종교활동에 힘썼으며 말년에는 수원에있는 남양교회를 맡으면서 신사 참배를거부하는 등 끝까지 일제에 저항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5
서울현충원 - 권병덕(權秉德) 묘 권병덕(1868년~1943년)동학농민운동 당시 손병희와 함께 교도를이끌었으며 천도교의 전제과장, 보문관장,금융관장, 이문관장 대리 등을 역임했다1919년 고종의 국장을 위해 상경했을 때3.1운동에 대한 계획을 들었고 초안을검토하고 민족대표로서 서명하였다3.1운동 당일 태화관에서 만세삼창을외친 후 체포되고 2년간 옥고를 치렀다출옥 후 천도교 감사원장 등을 지내고1927년 신간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2
서울현충원 - 나용환(羅龍煥) 묘 나용환(1864년~1936년)젊은 나이에 나인협 등과 함께 동학에가담하여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고종 국장을 위해 상경했다가 손병희,권동진, 오세창 등을 만나 3.1운동에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에 찬성하며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3.1운동 당일 태화관에 모여 만세삼창을외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1
서울현충원 - 박동완(朴東完) 묘 박동완(1885년~1941년)기독교인으로 기독신보의 서기 및 주필로활동했으며 주일학교운동을 주도했다1919년 박희도로부터 3.1운동 참여를권유 받고 손병희 등과 만나 회의했으며3.1운동 당일 민족대표로서 태화관에서체포되어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출옥 후 흥업구락부에 참여하고 신간회가창립되자 총무간사로 활동했으며 일제의탄압이 심해지자 하와이로 이주하여 목사로활동하면서도 이승만이 주도하고 있던동지회에 참여하고 국내의 흥업구락부회원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았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9
서울현충원 - 홍병기(洪秉箕) 묘 홍병기(1869년~1949년)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동학이천도교로 개칭되자 천도교 도사가 되었다1919년 손병희, 권동진 등과 만나 만세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찬성했다3.1운동 당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하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 간의옥고를 치른 후에도 항일운동을 위해만주로 망명하여 고려혁명당 창당에참여하였다가 일제에 붙잡혀 다시2년간을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했다해방 후 삼일동지회 고문으로 활동하고동학농민운동 기념 행사에 참여하는 등의활동을 하다 군용 트럭에 치여 큰 부상을입고 육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8
서울현충원 - 김완규(金完圭) 묘 김완규(1876년~1949년)권동진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했으며천도교 중앙총부 전제과장, 천도교 기관지 발행인 등으로 활동했다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한 사람으로 서명했으며 독립선언식을마친 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2년간복역하다가 1921년 만기 출옥하였다그 후로는 종교 활동에 전념하였으며천도교 도령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4
서울현충원 - 신석구(申錫九) 묘 신석구(1875년~1950년)협성신학교를 나와 감리교목사가 되고전국 곳곳을 돌며 목회 활동을 이어갔다1919년 3.1운동 당시 오화영, 이승훈 등과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에서명하고 붙잡혀 2년간 옥고를 치렀다1930년대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이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었으며 1945년전승기원예배를 거부해 투옥되었다해방 후 북한에서 공산당을 반대하는활동을 하다 투옥되어 복역하던 중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