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1537년~1599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이어가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한양이 함락된 후
전라도순찰사 이광과 방어사 곽영이 군사를
모집할 때 광주목사로서 합류해 북진하다가
용인에서 일본군과 만나 싸웠으나 대패했다
그 이후 다시 군사를 모아 금산군 이치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정예부대와 싸웠는데
그들을 대파해 전라도순찰사로 승진하였다
수원 독성산성에서 우키타 히데이에의
부대를 격파했으며 부대를 나누어 선거이에게
시흥 금주산에 진을 치게 한 후 약 3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한강 건너 행주산성에 주둔하며
3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온 고바야카와의
부대와 격전을 벌여 대승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전공으로 도원수에 올랐으며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명나라 장수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크게 싸우지 못하고 퇴각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선무공신 1등에 봉해져
영가부원군에 추봉되고 시호 '충장'을 받았다
'경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주 권철(權轍) 묘 (0) | 2024.04.17 |
---|---|
양주 권순(權恂) 묘 (0) | 2024.04.16 |
양주 백숙양 묘 (현상윤 부인) (1) | 2024.04.14 |
구리 설태희(薛泰熙) 묘 (0) | 2024.03.23 |
구리 설원식(薛元植) 묘 (0) | 2024.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