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17

양주 서광범(徐光範) 묘

서광범(1859년~1897년)영의정을 지낸 서용보의 증손자로일찍이 박규수, 유홍기 등의 영향을 받고김옥균, 박영효와 교류하며 개화파가 되었다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보빙사 민영익의종사관으로 미국과 유럽을 순방하고 귀국했다1884년 김옥균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고좌우영사 겸 우포장이 되어 개혁을 주도하려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삼일천하로 끝났고일본으로 망명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1892년 미국 시민권을 얻고 번역관이 되어활동하다 일본 외무성의 주선으로 귀국하여제2차 김홍집 내각에서 법부대신이 되었다내부대신 박영효와 적극적으로 갑오개혁을추진했으며 특히 사법제도 근대화에 관심을들여 참형 대신 교수형 제도를 채택하였다제4차 김홍집 내각에서 학부대신이 되었으나얼마 안 가 미특명전권공사로 발령받았고아관파천으로..

경기도 2024.08.22

양주 이준(李準) 묘

이준(1545년~1624년)덕천군 이후생의 후손으로정여립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당시도승지로서 공을 세워 평난공신 2등에책록되고 전성군에 봉해졌으며 임진왜란이일어나자 운향사가 되어 명나라 군사의군량미 조달을 맡았으나 병으로 은퇴했다그 후 병조참판,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간이되었으나 홍여순의 일파로 몰려 파직되었고광해군 때 형조판서, 공조판서, 이조판서를지냈으나 계축옥사가 일어나고 인목왕후를유폐하는 등 정사가 어지럽자 은퇴하였다

경기도 2024.08.20

양주 남곤(南袞) 묘

남곤(1471년~1527년)성종 때 관직에 나가 여러 관직을역임하다 갑자사화 때 서변으로 유배당했다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대사헌, 우참찬 등을거쳐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내면서승승장구 하다가 조광조 등 사림파에 의해소인으로 몰리자 심정 등과 기묘사화를일으켜 조광조, 김정 등 신진 사림파를숙청하고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말년에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자신의글로 인해 화를 입을까 염려하여 모든글을 마당에 놓고 불태웠으며 사후에'문경'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나 사림의탄핵을 받아 삭탈되었고 심정, 홍경주와함께 기묘삼흉으로 불리며 지탄받았다

경기도 2024.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