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29

서울현충원 - 오화영(吳華英) 위패

오화영(1880년~1960년)동학에 입교해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으며미국인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으로활동했고 서울 종교교회에서 장로목사 안수를받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태화관에서독립선언식을 진행하고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선고받고 만기 출옥하였다. 이후 수표교교회,상동교회, 연화봉교회 담임목사를 지내는 등종교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신간회, 광주학생운동에참여하고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체포되는 등독립운동을 이어갔다. 해방 후 조선민족당 당수에임명되었다가 민족자주연맹에 참여했고 김구,김규식 등과 평양에 건너가 남북연석회의에참여했다. 또한 건국대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조선정치대학의 학장이 되었고 서울 종로구에서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

서울현충원 2025.04.21

서울현충원 - 현순(玄楯) 묘

현순(1880년~1968년)3.1운동에 목사로서 참여하였고 중국상해에서 평화회의가 열리자 미국 대통령우드로 윌슨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했다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상해로 모이자이광수 등과 함께 임시독립사무소를 개설했고같은 해 서울에서 국내 13도대표회의가 개최되자평정관에 선임되었다. 이후 이동녕, 손정도 등과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했고 임시정부가수립되자 외무차장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8월내무차장에 임명되고 임시정부 특파원으로서만주, 노령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미국 뉴욕에도착해 구미위원부 위원장 서리로 활동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3.22

서울현충원 - 김정련(金正連) 묘

김정련(1895년~1968년)3.1운동에 참여하여 태형을 선고받았고전라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후 해외로망명하여 공명단에서 활동하다가 밀정에의해 붙잡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망우리 근처에서일본 우편차를 습격해 돈을 빼앗은 뒤강원도로 달아났으나 이를 추격한 일본경찰과 일주일동안 항전을 벌이다 결국다시 체포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수감 중 옆 방에 안창호가 수감되자 그에게일명 타벽통보법을 알려주려 했으나간수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간수들의시선을 돌리기 위해 자신의 오물을 뒤집어쓰는 등 미친척 행동했다. 결국 모진 매질을당하고 독방에 결박되어 갇히게 되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1.13

서울 삼일독립선언유적지

삼일독립선언유적지1919년 3월 1일 종교계 지도자로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태화관에서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3.1운동이시작되었다. 3.1운동은 서울을 시작으로지방으로 뻗어나갔으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확산되었다. 현재 태화관이 있던자리에는 빌딩이 들어서 그 흔적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후세에 조형물을 설치하여3.1운동의 시작점인 이곳을 기억하고 있다

서울현충원 - 이갑성(李甲成) 묘

이갑성(1889년~1981년)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고최연소자로서 청년층을 대표하여 3.1운동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출옥 후 YMCA 이사로서 청년들을 지도했고신간회 사건의 여파로 상해로 망명했으나귀국 후에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체포되었다해방 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으로 활동했고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광복회장,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재 등을 지내며 원로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다 3.1기념행사에참석 도중 사망하였는데 민족대표 33인의마지막 생존자로 삼일동지회 고문을 지냈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9.26

서울현충원 - 이종훈(李鍾勳) 묘

이종훈(1856년~1931년)동학에 입교하여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고교주 최시형이 교수형 당하자 옥리를 매수해몰래 시체를 빼내어 광주에서 장례를 치렀다1919년 고종의 국장을 위해 상경했다가손병희, 오세창 등을 만나 3.1운동에 대한계획을 듣고 참여하는데 동의하였으며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서 태화관에서만세 삼창을 외치고 경찰에게 체포되었다출옥 후에도 천도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6

서울현충원 - 이필주(李弼柱) 묘

이필주(1869년~1942년)대한제국군에 들어가 장교로 근무하다군대가 해산되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정동교회에서 목자생활을 이어가던 중이승훈, 이갑성 등을 만나 3.1운동에 대한계획을 듣고 민족대표로서 참여하기로 했다3.1운동 당일 태화관에서 만세삼창을 하고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 해종교활동에 힘썼으며 말년에는 수원에있는 남양교회를 맡으면서 신사 참배를거부하는 등 끝까지 일제에 저항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5

서울현충원 - 권병덕(權秉德) 묘

권병덕(1868년~1943년)동학농민운동 당시 손병희와 함께 교도를이끌었으며 천도교의 전제과장, 보문관장,금융관장, 이문관장 대리 등을 역임했다1919년 고종의 국장을 위해 상경했을 때3.1운동에 대한 계획을 들었고 초안을검토하고 민족대표로서 서명하였다3.1운동 당일 태화관에서 만세삼창을외친 후 체포되고 2년간 옥고를 치렀다출옥 후 천도교 감사원장 등을 지내고1927년 신간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2

서울현충원 - 나용환(羅龍煥) 묘

나용환(1864년~1936년)젊은 나이에 나인협 등과 함께 동학에가담하여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고종 국장을 위해 상경했다가 손병희,권동진, 오세창 등을 만나 3.1운동에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에 찬성하며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3.1운동 당일 태화관에 모여 만세삼창을외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