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04

서울 무안대군(撫安大君) 묘

무안대군 이방번(1381년~1398년)조선 태조와 신덕왕후의 아들로태조의 7남이 되며 정종, 태종 등의이복동생이자 의안대군의 친형이 된다처음에 세자로 내정되었으나 정도전,조준 등이 '성격이 광망하고 경솔하다'며반대하여 동생인 의안대군에게 자리를빼앗겼다. 1398년 이복 형인 정안군이왕자의 난을 일으킬 당시 난에 동참할것을 권유 받았으나 거절하면서도 아버지태조에게도 알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이후 난이 정안군의 승리로 돌아가자성문 밖으로 쫓겨났고 도중에 살해당했다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이 봉사손이 되었으며대군에 추증되고 시호 장혜(章惠)를 받았다 삼한국대부인 개성 왕씨개성 왕씨 왕우의 딸로무안대군과의 사이에서 자식은 없다

서울 광평대군(廣平大君) 묘

광평대군 이여(1425년~1445년)조선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로세종의 5남이 되어 문종, 세조, 안평대군,임영대군의 동생이자 금성대군, 평원대군,영응대군 및 이복 동생들의 형이 된다학문에 능통하여 아버지 세종의 총애를받았고 무안대군의 봉사손이 되어 제사를받들었으나 요절하였다. 시호는 장의(章懿) 영가부부인 평산 신씨평산 신씨 신자수의 딸로광평대군과의 사이에서 1남을 두었다

서울 이중섭(李仲燮) 묘

이중섭 (1916년~1956년) 도쿄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학을 전공하다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1940년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으며 1943년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을 수상하였다 결혼 후 강원도 원산에서 살았으나 북한으로부터 많은 억압을 받았고 결국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북진하자 원산을 벗어나 제주도에 정착하였다 하지만 생활고를 겪으며 부산으로 터전을 옮겼고 일본으로 건너간 아내와 두 아들을 그리워하다 영양실조와 정신이상 증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 , , 등이 있다

서울 오재영(吳哉泳) 묘

오재영 (1897년~1948년) 1919년 혈성단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와 비밀리에 연락하면서 기관지인 독립신문에서도 활동했다 1920년 의열단원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에서 서장에게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했을 당시 상해에서 가져온 폭탄 한 개를 맡아두는 등 박재혁이 거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 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