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98

서울 이병홍(李炳洪) 묘

이병홍 (1891년~1955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숨겨와 진주 3.1운동을 돕고 고향인 산청의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했으며 해방 후 반민특위 제1조사부장이 되어 친일파 청산에 힘썼으며 제2,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다 임기 중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이병홍의 묘비는 해공 신익희가 썼다

서울 13도 창의군탑

13도 창의군탑 1991년 8월 14일 동아일보사가 3.1운동 유적 보존 운동으로 건립하였다 1907년 11월 전국 13도에서 모인 의병이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망우리 일대에서 펼친 서울 진공 작전을 기념하는 탑으로 13도 창의군은 총대장에 이인영, 군사장에 허위를 추대하였다 허위는 선봉대 300명을 이끌고 이곳에서 일본군과 혈전을 벌였으나 후속 부대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퇴각하였다

서울 창빈 안씨(昌嬪 安氏) 묘

창빈 안씨 (1499년~1549년) 본관은 안산으로 부친은 안탄대이다 중종의 후궁이 되어 영양군 이거, 이수(조졸), 덕흥군 이초, 정신옹주 등 3남 1녀를 낳았으며 이 중에서 덕흥군 이초의 아들이 선조가 되었다 선조 이후의 조선 국왕은 전부 창빈 안씨의 후손이 되었으며 묘는 동작릉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현재 그녀의 묘역에는 서울현충원이 들어서 있으며 바로 옆에 이승만, 김대중 대통령 묘가 있다

서울 상진(尙震) 묘

상진(1493년~1564년)1519년 문과 급제 후 여러 관직을거쳐 대사간, 형초참판을 지냈고경기도관찰사가 되어 민정을 잘 다스렸다그 후 형조판서, 한성판윤, 대사헌을지내고 공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내다가인종 즉위 후 윤원로와 결탁했다 하여경상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명종 즉위 후다시 형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냈고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내며 국정을총괄했다. 임꺽정의 난을 평정하는데일조했으며 말년에 기로소에 들어가고궤장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서울 효령대군(孝寧大君) 묘

효령대군 이보(1396년~1486년)조선 태종과 원경왕후의 아들로형인 양녕대군이 폐세자되고 동생인충녕대군이 자신을 제치고 세자가되었으나 우애가 좋았다고 한다불교에 빠져 많은 유신들의 반대에도불구하고 승도를 모아 불경을 강연하도록 했다회암사의 중수를 건의하고 원각사가 창건되자조성도감 제조가 되어 역사를 감독했다세종부터 성종까지 장수하며 왕실의큰 어른으로 존경, 대우 받았다 예성부부인 해주 정씨해주 정씨 정역의 딸로효령대군과의 사이에서 6남 1녀를 두었다

서울 대법원(大法院) 청사

대법원 본래의 대법원 청사는 덕수궁 옆 르네상스식 건물을 사용했는데 1995년 현재의 청사가 새로 신축되어 이전했으며 옛 청사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됨에 따라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되었으며 김병로 선생이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청사는 본관, 동관, 서관,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관에는 자유, 평등, 정의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서울 김주열(金朱烈) 묘

김주열 (1943년~1960년) 마산상고에 지원하고 합격자 발표에 앞두고 마산에 내려왔다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됐다 27일 후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채로 떠올랐으며 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김주열 열사의 묘는 총 3곳에 있다. 진짜 묘는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에 있으며 3.15 민주 묘지와 4.19 민주 묘지에 각각 가묘를 만들어 두어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