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98

서울 신민당사 터

신민당사신민당은 박정희 정권 당시 야당으로여당은 민주공화당이었다. 1967년민중당과 신한당의 합당으로 창당되었고기존 종로구 관훈동에 당사가 있었으나1979년 5월 마포구 도화동으로 옮겼다대표적인 인물로 유진산, 김대중, 김영삼,이철승 등이 있으며, 1979년 YH무역 사건관련해 이곳에서 농성을 하던 노동자김경숙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다

서울 김구(金九) 묘

김구(1876년~1949년)조선 왕조 마지막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떨어졌고 동학에 입도해 동학군 선봉장으로해주성을 공격했는데 이 사건으로 진사안태훈의 집에서 은거하며 그의 아들이었던안중근과 교류하였다. 안악군 치하포에서일본인 쓰치다를 보고 을미사변으로 죽은국모의 원한을 풀겠다며 죽여버렸고 결국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고종이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사형을 면하였다신민회에서 활동하다 105인 사건으로체포되어 1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형기 2년을 남기고 가출옥하게 되었는데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하여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되었다이후 내무총장, 국무총리 대리 등을 지내고국무령 자리에 올라 임시정부를 이끌며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 윤봉길로하여금 무장독립운동을 지도하였다임시정부가 존폐의 위기에 서..

서울 안중근(安重根) 묘

안중근(1879년~1910년)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말타기와사냥에 능했으며 명사수로 이름을 알렸다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진압하는데 가담하기도 했으며 가톨릭에입교해 도마[Thomas]라는 세례명을 받았다을사늑약 이후 망명, 의병 활동에 뛰어들어대한의군 참모충장 겸 특파독립대장으로엄인섭 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일본군과전투를 벌였으나 패하였다. 1909년 동지11명과 동의단지회를 조직해 침략의 원흉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결심했고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함께 행동에나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암살하는데 성공하고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뤼순 감옥에수감되어 사형을 선고 받고 을집필한 후 형집행으로 순국하였다. 현재유해는 봉환되지 못하였으며 효창공원에가묘를..

서울 이봉창(李奉昌) 묘

이봉창(1901년~1932년)일본인 밑에서 점원 등으로 일하다여러 번 해고당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라는이름까지 얻는 등 진심으로 일본인으로살고 싶어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차별당했고 결국 생각을 고쳤다고 한다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와 접촉해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다짐했으나당시 능숙한 일본어, 특유의 일본인 제스처등으로 임정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어려움을겪었다. 하지만 김구는 그를 믿어주었고한인애국단에 가입해 거사를 준비하게 됐다1932년 1월 8일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여러 대의 마차 중 어느 곳에 히로히토가타있는줄 몰랐고 결국 두 번째 마차에다폭탄을 던졌지만 히로히토는 첫 번째마차에 타고 있어 위기를 벗어났다거사 직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

서울 윤봉길(尹奉吉) 묘

윤봉길(1908년~1932년)3.1운동 이후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한학을 배우러 서당에서 공부하였다월진회를 조직해 야학과 강습을 열며농촌 진흥, 문맹 퇴치, 계몽 운동에 힘쓰다'장부가 집을 나서니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중국에서 세탁소 직원으로 일하며기회를 보다 이봉창의 의거 이후에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그러다 일본이 상해사변 전승 축하기념식겸 천장절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연다는 소식을 듣고 거사를 결심했고1932년 4월 29일, 행사 도중 단상을 향해폭탄을 투척했다. 이로 인해 상해 파견군사령관 시리카와, 상해 일본거류민단장가와바다 등은 사망했고 제3함대사령관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등은 중상을입었다. 거사 직후 일본 헌병에게 구타당하며 체포되었고 모진 ..

서울 백정기(白貞基) 묘

백정기(1896년~1934년)3.1운동 이후 무장독립운동에 뛰어들어일본군 시설물을 파괴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회영, 류자명 등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자연스럽게 아나키스트 계열 독립운동을하게되었고 폭탄 제조 기술을 배우면서여러 차례 무장 투쟁을 계획했으나 상황이여의치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중국, 일본에 있는 무정부주의자들과 모여항일구국연맹을 조직했고 흑색공포단을조직해 여러 기관의 파괴, 요인 암살 등을계획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 주중대사아리요시가 상해 홍커우에 있는 요정육삼정에서 일본 정객, 친일 중국 정객,군인 등 100여명과 연회를 연다는 소식을듣고 이강훈, 원심창과 함께 습격을 준비해대기하던 중 경찰에게 체포되어 일본으로이송되었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