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229

남양주 문익환(文益煥) 묘

문익환(1918년~1994년)숭실중학교 재학 중 신사참배를 거부해중퇴했고 봉천신학교 재학 중 학병을거부했으며 전도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그 후 한빛교회 목사로 활동함과 동시에한국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구약학을강의하고 신구교 구약 번역 책임자가 됐다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수감됐고1978년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을 비판하여다시 수감되고 1980년 내란예비음모죄로3번째 투옥되었다가 31개월 만에 출옥했다출옥 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제4차 범민족대회 대회장 등을 지냈다그러다 1989년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만나 두 차례 회담을 가졌고 4.2 공동성명을발표하는 통일 운동의 행보를 보였다1992년에는 노벨평화상 후..

경기도 2024.10.10

남양주 김근태(金槿泰) 묘

김근태(1947년~2011년)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학생으로군부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의 배후자로지목되어 수배 생활을 하게 됐고 1975년 헌법비방 및 반대, 허가 없는 학생 집회 등으로긴급조치 9호 위반에 위반되어 수배 생활을하게 되어 7년 넘게 수배 생활을 하게 됐다신군부 정권이 시작되자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초대 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확산시켰으며 1985년 서울대 민주화추진위배우 조종 혐의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23일 동안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 물고문 등을 당해 평생 후유증이 남게 됐다석방 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정책기획실장 및 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3당 합당이 진행되자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주도하다 체포되어 다시 감옥 생활..

경기도 2024.10.07

남양주 계훈제(桂勳梯) 묘

계훈제(1921년~1999년)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징집에 저항하여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망명하고자 신의주로갔지만 체포되어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다하지만 계훈제는 여기서 독립운동 비밀결사요원들과 접촉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해방 후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교사들의노동조합 결성, 학생운동 조직을 지원했다박정희 정권 당시 한일협정 반대투쟁, 월남파병 반대운동, 삼선개헌 반대운동 등각종 사회 문제에 뛰어들었고 10월유신이후 장준하, 문익환 등과 함께 반유신운동을 벌이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투옥되기도 하였으며 6월 항쟁에도주도적인 역할로 참여하였다

경기도 2024.10.06

남양주 곽태영 묘

곽태영(1936년~2008년)1965년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하기위해 수소문 끝에 강원도 양구로 잠입했다그곳에는 안두희의 군납공장이 있었기때문에 주변에 하숙집을 얻었고 주변에장사꾼이라 속이기 위해 양말, 장갑 등을주변 민가에 실제로 팔기도 하였다그러다 마침내 안두희가 나타나자그에게 달려들어 격투하다 우물 옆에있던 돌로 안두희의 머리를 내리치고칼로 옆구리를 찌르는데 성공하였다안두희는 병원에서 큰 수술을 했고곽태영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선고받은 뒤에 풀려나게 되었다

경기도 2024.10.05

남양주 박태순 묘

박태순(1966년~1992년)한신대학교 철학과 학생으로민주화 운동 및 노동 운동가로 활동했다소규모 영세사업장에 위장 취업 하는 등노동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하다 공안 기관의미행, 감시를 당하던 중 부천시 수영기계에서퇴근한 후 행방불명 되었고 2001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시흥역 내 무단횡단을하다 열차에 치여 두부파열로 사망했다고 한다또한 지문불발견으로 신원불명자로 분류되어다른 곳에 무연고자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었다

경기도 2024.10.04

포천 이옥(李沃) 묘

이옥(?~1409년)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군사에 능하여 강릉도절제사로 있을 때침입한 왜구를 크게 격퇴하는 공을 세웠다아버지 이춘부가 신돈 일당으로 몰려처형당해 노비가 되어 추방되었다가우왕 때 복권되어 좌상시에 올랐고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세우는데가담하여 이성계 일파에게 공격을받아 파직되었으며 조선 건국 이후물러나 있다가 태조 때 다시 복귀하여태종 때까지 관직을 이어가기도 했다

경기도 2024.09.15

포천 이사검(李思儉) 묘

이사검(?~1446년)강릉대첩을 이끈 이옥의 아들이다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자 그를보좌했고 왜구가 쳐들어와 병선을불사르는 짓을 하자 황해도수군첨절제사에임명되었으며 조선절제사가 되어 왜구를견제했으나 왜구가 식량을 요구하며 교묘히싸움을 하지 않는 술책을 써오자 이들을강력히 물리치지 않은 죄로 변방에 충군됐다명나라에 청해(매)를 바치기위해 요동을지나다 매가 죽는 일이 발생하여 죽은 매를가지고 북경의 대궐에서 사죄하니 명나라황제가 가상히 여겨 장군모를 하사했다

경기도 20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