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 (1849년~191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수신사로 김기수가 일본으로 파견될 당시 수행원으로 함께 가서 일본 물정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 후 외부협판, 탁지부협판 등 여러 관직을 거치고 일본 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다 귀국 후 황해도관찰사, 경리원경을 거쳐 이완용 내각이 성립되자 탁지부대신이 되어 고종의 퇴위와 군대 해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에 동의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10년 어전회의에서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강요하였으며 이러한 공로로 경술국치 이후 조선귀족 자작에 봉해지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됐다 매국노 중에서 가장 고령으로 제일 먼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