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224

고양 고영희(高永喜) 묘

고영희 (1849년~191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수신사로 김기수가 일본으로 파견될 당시 수행원으로 함께 가서 일본 물정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 후 외부협판, 탁지부협판 등 여러 관직을 거치고 일본 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다 귀국 후 황해도관찰사, 경리원경을 거쳐 이완용 내각이 성립되자 탁지부대신이 되어 고종의 퇴위와 군대 해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에 동의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10년 어전회의에서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강요하였으며 이러한 공로로 경술국치 이후 조선귀족 자작에 봉해지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됐다 매국노 중에서 가장 고령으로 제일 먼저 죽었다

경기도 2024.04.23

고양 김정록(金正祿) 묘

김정록 (1907년~1982년) 조선귀족 남작 김춘희의 손자이며 김교신의 아들로 아버지가 사망하자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습작 받았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중국 유학 중이라 작위를 받지 않으면 낙인 찍힐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받았다고 해명했으며 습작 자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주위에서 그가 남작 신분임을 알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하고 풀려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연구분야는 동양미학으로 시인 김지하가 존경하는 스승 중 한 명으로 꼽았으며 문화재청장 유홍준도 김정록의 제자이다

경기도 2024.04.22

고양 김춘희(金春熙) 묘

김춘희 (1855년~1924년) 김승집의 아들로 김항집에게 입양되었으며 내각총리대신 김홍집의 조카가 된다 내부협판, 이조참판, 예조참판을 지내고 갑오개혁 당시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됐다 학부협판, 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내다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수작받았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일제에게 협력하였다

경기도 2024.04.20

양주 권율(權慄) 묘

권율(1537년~1599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이어가던 중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한양이 함락된 후전라도순찰사 이광과 방어사 곽영이 군사를모집할 때 광주목사로서 합류해 북진하다가용인에서 일본군과 만나 싸웠으나 대패했다그 이후 다시 군사를 모아 금산군 이치에서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정예부대와 싸웠는데그들을 대파해 전라도순찰사로 승진하였다수원 독성산성에서 우키타 히데이에의부대를 격파했으며 부대를 나누어 선거이에게시흥 금주산에 진을 치게 한 후 약 3천 명의병사를 이끌고 한강 건너 행주산성에 주둔하며3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온 고바야카와의부대와 격전을 벌여 대승을 이끌어냈다이러한 전공으로 도원수에 올랐으며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일본군과 맞서싸웠으나 명나라 장수들의 비협조적인태도로 크게 싸우지 못하고 퇴..

경기도 2024.04.15

양주 백숙양 묘 (현상윤 부인)

현상윤(1893년~1950년)1914년 일본 와세다대학을 입학해1918년 졸업하고 귀국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교사로 부임하여 교육자로 활동하였다3.1운동 당시 송진우, 최린, 최남선 등과중앙학교 숙직실에서 거사를 도모하고기독교와 천도교가 참여하는 과정에서중요한 역할을 하며 민족대표로서 서명하려고했으나 어린 사람은 보호해야한다는주장으로 서명하지 않고 주모자 48인으로분류되어 체포되고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그 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내고재단법인 중앙학원 이사, 조선물산장려회 이사등을 지내다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임전보국단 발기인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친일 강연, 친일 글 등을 기고하였다해방 후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던 중고려대학교로 인가되면서 초대 총장이 되었다그러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사망했다

경기도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