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223

구리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묘

아사카와 다쿠미(1891년~1931년)한국에 먼저 온 형 노리다카를 따라조선에 건너와 총독부 산림과 임업시험장에서근무했으며 조선의 도자기 등 민예품에 큰관심을 보이고 이를 연구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일본의 무분별한 개발로 헐벗은 산을 보고안타까워했고 이와 관련된 글을 발표하고조림 사업에 이바지하였으며 조선의 민예를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총독부가 신궁을세우면서 광화문을 헐려고 하자 이를 반대했다1924년에는 조선민족박물관을 설립하는 등의활동을 하고 식목 행사 준비를 위해 무리하다결국 과로한 나머지 급성 폐렴으로 사망하였다조선의 산과 민예를 사랑했던 다쿠미는 사망 후망우리공동묘지에 안장되어 한국의 흙이 되었다

경기도 2024.05.16

구리 이인성(李仁星) 묘

이인성(1912년~1950년)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처음 입선한후로 천재적인 화가로 이름을 날렸으며전일본수채화회전, 제국미술원전,문부성미술전, 광풍회전에서 연달아입선하였고 이 시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1945년 이화여고 미술 교사로 일했으며광복 후에 이화여대 미술과 강사를 지내고조선미술문화협회에서 활동하고 개인전을여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6.25전쟁 시기에평소 술을 즐겨먹고 호탕하고 성격이었던 탓에밤까지 술을 먹은 후 경찰에게 호통을 쳤고처음에 경찰은 높은 분인줄 알고 보내줬으나얼마 후 평범한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화가 난 경찰이 집까지 쫓아가 소리쳤고이 와중에 공포탄인줄 알고 총을 쏘았으나실탄이었고 결국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경찰들은 자신들이 한 짓을 숨기기 위해간첩, 친북이라며 매장하였으나 지인..

경기도 2024.05.15

구리 안창호 묘 터

안창호(1878년~1938년)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큰 역할을하고 미국에서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안창호는 1938년 고문후유증으로 인해사망하고 자신이 아꼈던 제자이자 비서유상규 곁에 묻어달라던 유언에 따라서유상규 묘 바로 위에 묘가 조성되었다그러나 1973년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어부인인 이혜련 여사와 합장되었으며묘 터에는 비석 하나만을 세워놓아안창호의 묘 터임을 알리고 있었는데2016년 도산기념관 수장고에 있던안창호의 구 묘비를 본래의 자리인망우리에 이전하였고 그에 맞춰2022년 안창호의 가묘를 조성하였다

경기도 2024.05.10

구리 유상규(劉相奎) 묘

유상규(1897년~1936년)경신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3.1운동이후 학업을 중단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조사원으로 평북 강계 지역 책임자로 활동했다1920년 안창호의 비서가 되었으며 흥사단에가입하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오다가안창호의 권고로 학교를 복학하였으며졸업 후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 병원의외과 의사 및 강사로 활동함과 동시에동아일보 주최의 강연회에 참석하여계몽 활동을 벌였으며 수양동우회 등에도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민족의 건강을 위한의학적 계몽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나환자를 치료하던 중 단독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경기도 2024.05.09

구리 오한영(吳漢泳) 묘

오한영(1898년~1952년)의학자이자 교육자인 오긍선의 아들로미국 에모리대학에서 내과학을 전공하고일본 교토대학대학원에서 의학 박사가 되었다그 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내과교수를맡음과 동시에 병원장직도 함께 겸하였다6.25전쟁이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갔던 시기보건부장관으로 임명되어 피난민구호를위해 구호병원 설치 등 공을 세웠다

경기도 2024.05.08

구리 오긍선(吳兢善) 묘

오긍선(1878년~1963년)미국 루이스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귀국하여 군산 야소교병원장이 되었다그 후 광주, 목포 야소교병원장을 거쳐정명여학교 교장을 지내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겸 의사가 되었다가일본 도쿄제국대학에서 피부과를 공부하고돌아와 피부과 과장을 지내고 경성보육원을설립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학감이되었으나 친일단체 유민회의 평의원이 되었다이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부교장을 거쳐교장이 되었으나 동민회 평의원, 조선교육회평의원, 경성군사후원연맹 부회장 등을 지내고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 겸 이사, 조선임전보국단발기인 등 많은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경기도 2024.05.07

구리 이영준(李榮俊) 묘

이영준(1896년~1968년)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넘어가 도쿄제국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받은 후 귀국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부속병원장, 교장 등을 역임하며 교육과더불어 후임들의 양성을 위해 힘썼다광복 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을 지낸 것에 이어제4.5.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국회부의장을역임하는 등 정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경기도 2024.05.06

구리 박승빈(朴勝彬) 묘

박승빈(1880년~1943년)일본으로 건너가 중앙대학 법학과를졸업하였고 돌아와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며1925년에는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냈다교장을 지내는 동안 국어연구에 몰두했으며보성전문학교와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조선어학'을 강의하는 등의 활동을 보였다1931년 사람들을 모아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고조선어학회의 [한글마춤범통일안]에 반대하며여러 논설들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이는간편해야 하는 언어가 복잡하고 혁신적이면일반대중에 녹아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서인데하지만 오히려 박승빈이 사회의 동조를얻지 못했고 결국 실의 속에서 사망하였다

경기도 2024.05.05

구리 방정환(方定煥) 묘

방정환(1899년~1931년)천도교청년회, 개벽사 등에서 활동하며천도교에 관여했으며 1917년에는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딸 손용화와결혼하여 손병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청년문학단체 청년구락부를 조직하여어린이운동에 관심을 보였으며 3.1운동이일어나고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 체포되었다'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으며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 잡지 를창간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였다그 후 소년문제 강연회, 아동예술 강습회 등을주재하여 계몽운동과 아동문화운동에앞장섰으며 창작동화에 그치지 않고작품을 번역, 번안하는 등 아동문학과아동보호를 위해 헌신하다가 자신의건강을 챙기지 못했고 결국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금관문화훈장 추서)

경기도 202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