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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시무(李時茂) 묘

이시무(1532년~1592년)장례원 판결사를 지낼 당시 임진왜란이일어나자 노구였던 본인 대신 아들인이정립을 보내 선조를 호종하게 했다그에 그치지 않고 왕과 국가의 안정을바라며 매일 산대에 올라 북쪽을 향해네 번 절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일본군에게포위되어 항복을 권유받지만 오히려그들을 꾸짖었고 결국 순절했다. 시호는충민이며 사후 회성군에 봉작되었다

서울 이정립(李廷立) 묘

이정립(1556년~1595년)이시무의 아들로 기축옥사를 다스린공으로 평난공신이 되었으며 임진왜란당시 예조참의로서 선조를 호종했다왕이 금교역에 이르렀을 때 종묘와사직의 위패가 아직 개성에 남아있단소식을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개성으로달려가 위패를 평양으로 무사히 모셔왔다광림군에 봉해졌고 영의정에 증직됐다

서울 도정궁 경원당

도정궁 경원당도정궁은 종로구 사직동에 있던 궁으로덕흥대원군의 사당을 지키는 후손들의집이었다. 1979년 당시 소유주였던정재문이 건국대학교에 기증하며 현재위치로 이전하였으며 조선시대 건축기법을 간직하면서 유리창, 돌출된 현관등이 남아있어 근대의 변화롤 보여준다현재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있는 도정궁건물이기도 하며 현재 도정궁 터에는옛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건국대학교 구 서북학회 회관

구 서북학회 회관애국계몽단체인 서북학회의 회관으로1908년 준공되었다. 본래 서울 종로구낙원동에 있었으며 서북학회가 해체된후에 오성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었고보성전문학교의 교사로도 사용되었다그러다 상허 유석창이 소유하게 되어건국대학교 개교의 초석으로 삼았으며국민대학교, 단국대학교 또한 이 건물에서태동하였다. 1977년 도시계획으로 철거,해체하고 1985년 지금의 자리에 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