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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현충원 - 윤세복(尹世復) 묘

윤세복(1881년~1960년)대종교에 입교하고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각 지역에 학교를 세워 교육에 전념했다또한 여러 곳에 교당을 설립해 활동하던 중선종사인 무원종사 김교헌의 유명을 받들어교통을 이어 제3대 도사교에 취임하였다그러나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의압력으로 활동이 어려워지자 총본사를옮겼으며 동.서.북 도본사가 해체되고서울에 있는 남도본사는 폐쇄되었다하지만 이러한 압력에 굴하지 않고영안현 동경성에 총본사를 옮겨 단군을모신 천진전을 세웠으며 대대적인 교적간행사업을 펼치다가 결국 일본 경찰에게체포되었다. 광복과 함께 출옥되어 서울에총본사를 설치하고 홍익대학을 설립했으며선거에 의한 총전교선임제로 바꿔 조직체제를 정비하고 초대 총전교가 되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1.16

서울현충원 - 주기철(朱基徹) 묘

주기철(1897년~1944년)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교에입학해 1926년 졸업했다. 부산 초량교회목사로 부임해 본격적인 종교인 활동을시작했으며 당시 조만식, 유계준 등이다니던 산정현교회 목사가 되어 교회당건축에 착수하여 헌당식을 가졌으나신사참배 반대의 뜻을 비쳐 직전에경찰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않고 신사참배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농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산정현교회에서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를 설교했고 이번엔 다시 체포되는 것에그치지 않고 목사직을 파면 당하였다. 그 후로감옥에서 고생하다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1.15

서울현충원 - 이인영(李麟榮) 묘

이인영(1868년~1909년)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단발령까지 내려지자 유인석, 이강년 등과함께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제천의병에도참여했다가 훗날 해산했다. 그러다 1905년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다시 한 번 의병을일으키려 했으나 부친이 병석에 있어서뜻을 펼치지 못했다. 그 후 1907년에고종이 강제 퇴위 당하고 군대가 해산되자다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은찬, 이구재 등이의병들을 모집해 본인을 찾아와 총대장을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아버지가 병석에 있어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결국 수락했다. 이에그치지 않고 전국에 있는 의병들에게 모일것을 촉구해 허위, 민긍호, 신돌석 등 각 도의의병장들이 모였고 그렇게 결성된 단체13도 창의군의 총대장이 되었다. 그렇게서울로의 진격 작전을 계획했으나 이러한중요한 시기에 부친상..

서울현충원 2025.01.14

서울현충원 - 김정련(金正連) 묘

김정련(1895년~1968년)3.1운동에 참여하여 태형을 선고받았고전라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후 해외로망명하여 공명단에서 활동하다가 밀정에의해 붙잡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망우리 근처에서일본 우편차를 습격해 돈을 빼앗은 뒤강원도로 달아났으나 이를 추격한 일본경찰과 일주일동안 항전을 벌이다 결국다시 체포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수감 중 옆 방에 안창호가 수감되자 그에게일명 타벽통보법을 알려주려 했으나간수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간수들의시선을 돌리기 위해 자신의 오물을 뒤집어쓰는 등 미친척 행동했다. 결국 모진 매질을당하고 독방에 결박되어 갇히게 되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1.13

서울현충원 - 윤병구(尹炳球) 묘

윤병구(1889년~1929년)의열단의 단원으로 1922년 총독 및 일제고관의 처단과 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경찰서 등을 폭파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을유석현, 김지섭 등과 협의하였다. 같은 해에총독부 판사 백윤화에게서 2천원의 자금약속을 받고 유석현과 함께 군자금 수령을위해 집을 찾아갔으나 백윤화의 신고로이미 집에 잠복해 있던 경찰에게 체포됐다결국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옥사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1.12

서울현충원 - 이종암(李鍾巖) 묘

이종암(1896년~1930년)대구은행에서 출납계 주임으로 근무하다가만주에서 온 독립운동가들과 비밀결사를조직하고 은행 돈을 가지고 만주로 넘어가무관학교에서 군사학을 배웠다. 길림성에서황상규, 김원봉, 이성우 등과 의열단을조직했으며 폭탄제조법을 배웠다. 1922년상해에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를처단하기 위해 작전을 구상했으나 실패한다1925년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밀입국하여 활동했으나 결국 경찰에게체포되어 징역 13년형을 받고 옥고를치르다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1.09

서울현충원 - 문일민(文一民) / 안혜순(安惠順) 묘

문일민(1894년~1968년)3.1운동 당시 만세 운동에 참여했으며남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에서군사 훈련을 받았다. 광복군총영에 참여하여국내 일제 관청을 폭파하고 요인을 암살하며독립에 대한 의지를 세계에 알리려 했다거사 행동대는 평양으로 잠입해 경찰 한 명을사살했고 경찰부 장벽 일부를 파괴하는데성공했고 문일민은 궐석재판에서 무기징역을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의부 등에참여하였고 상해교민단장을 지냈고 광복 후귀국하여 를 발간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안혜순(1903년~2006년)중국으로 건너가 살다 그곳에서 문일민과만나 혼인하였다. 남편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일할때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했으며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사용한 도시락 폭탄을 만든 장본인이다 (건국포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1.08

남양주 신빈 신씨(信嬪 辛氏) 묘

신빈 신씨(1377년~1435년)본관은 영월로 부친은 신영귀이다태종의 후궁으로 함녕군 이인, 온녕군 이정,정신옹주, 정정옹주, 숙정옹주, 숙녕옹주,소신옹주, 소숙옹주, 숙경옹주 등 3남 7녀를낳았으며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태종이상왕으로 있을 때 극진히 간병하여 신녕궁주에봉해졌고 태종이 사망하자 머리를 깎고비구니가 되었으며 그녀가 사망하자 세종은국모에 준하는 예우를 해주었다

경기도 202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