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49

서울현충원 - 김학규(金學奎) / 오광심(吳光心) 묘

김학규(1900년~1967년)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교편을잡던 중 조선혁명당에 가입하고 군사령부참모장으로 임명되어 영릉가전투, 통화현전투등에 참여하고 지휘하며 전공을 쌓아 올렸다창사에서 지청천과 만나 임시정부 군무부에소속되었으며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총사령부 참모에 임명되고 1941년에는 광복군제3지대장으로 취임하여 공작, 정보수집 등을지도하고 동시에 유격전을 전개해 전공을 세웠다해방 후 중국에서 교포를 귀국시키는 활동을 하다1948년에서야 귀국했으며 한국독립당 소속으로정치활동을 하다 자택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오광심(1910년~1976년)한국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의 부인으로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하였으며 난징에 있는대한애국부인회의 간부로도 활동하였다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지..

서울현충원 2024.05.30

서울현충원 - 강우규(姜宇奎) 묘

강우규(1855년~1920년)경술국치 이후 러시아로 이주했으며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흥동동포 400~500명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이고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가입하고 라오허현 지부의 책임자가 되었다신임 총독이 부임된다는 소식을 듣고 수류탄을구매해 배를 타고 원산으로 들어와 서울로 상경하고거사날을 기다렸으며 1919년 9월 2일 명주 수건에폭탄을 감싸고 남대문역으로 향했으며 오후 5시,사이토 총독이 탄 기차가 도착하고 환영 행사를마친 사이토 총독이 준비된 마차에 타려는 순간폭탄을 던졌으나 사이토는 혁대에 파편 조각이박혔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며 주위에 있던경찰들과 신문기자 등 37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현장에서 체포되지는 않았으나 친일 경찰인김태석에게 체포되었으며 결..

서울현충원 2024.05.29

서울현충원 - 신팔균(申八均) / 임수명(任壽命) 묘

신팔균(1882년~1924년)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여육군 정위까지 올랐으나 1907년 군대가해산당하자 독립군을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여러독립운동가들과 무오독립선언에 서명하였다지청천, 김경천 등과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독립군 양성에 힘썼으며 1922년 대한통의부가결성되자 군사위원장 겸 총사령관이 되어일본군과 수 차례 전투를 벌여 성과를 올렸다의용군의 일부가 분리되어 다른 독립단체에참여하자 이를 규합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독립군 훈련지인 흥경현 왕청문 이도구에서무관학교 생도와 독립군의 합동 군사 훈련을주도하던 중 일본군과 매수된 장쭤린군의습격을 받았고 결국 흉탄에 전사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임수명(1894년~1924년)1912년 서울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경찰에..

서울현충원 2024.05.28

서울현충원 - 권동진(權東鎭) 묘

권동진(1861년~1947년)평소 유길준, 우범선 등 개화파 인사들과친하게 지냈는데 1895년 을미사변에 연루되어친형 권형진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이때 동학 교주로 망명 중이었던 손병희를만났으며 손병희와 함께 귀국하여 천도교가창건될 당시 대도주가 되어 핵심 인물이 되었다대한제국 시기에 계몽 운동을 하였으나결국 대한제국은 멸망했고 경술국치 후에는천도교 지도자로서 활동하다 손병희, 최린 등과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고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체포되어옥살이를 살았으며 출옥 후에도 천도교 지도자로6.10 만세 운동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줬으며1927년 신간회가 창립되자 부회장을 맡았다해방 후에는 임시정부환영준비위원장을 맡고신한민족당을 창당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5.27

서울현충원 - 이종일(李鍾一) 묘

이종일(1858년~1925년)제국신문을 순 한글로 창간하였으며그곳에서 사장과 기자로서 개화, 계몽 등에앞장섰고 황성신문, 만세보 등에서도 활동했다1905년 천도교에 입교했으며 '천도교회월보'의월보과장을 지내고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의사장을 지내며 각종 천도교계 서적을 간행했다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보성사에서 극비로 독립선언문 3만 5천장을인쇄하는데 성공하고 전국에 배포하였다이로 인해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 받고복역하다 2년 6개월만에 가출옥하였으며1922년 보성사 사람들, 천도교 교인 등과제2의 3.1운동을 계획하고 실천하던 중에발각되어 실패하고 영양실조로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5.26

서울현충원 - 김상옥(金相玉) 묘

김상옥(1889년~1923년)3.1운동이 일어나고 혁신단을 조직하고혁신공보를 발행하고 배포하여 독립에대한 정신을 사람들에게 고취시켰다김동순 등과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제의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할 계획을하다가 발각되어 상하이로 망명하였다이때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1년 귀국해군자금을 모으고 정세를 파악했으며1922년 폭탄, 권총을 휴대하고 잠입해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건물의 일부가 파손되는 등 아수라장을만들고 매부 고봉근의 집에 몸을 숨겼다하지만 은신처가 일본 경찰에게 탄로나자두 손에 권총을 들고 총격적을 벌이며도주했고 추격을 따돌리는데 성공했다효제동 이혜수의 집에서 동상 등을 치료하며은신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마저도 발각되고다시 총을 들고 도주했으나 이번에는수가 너무 많았고 무려 약 3..

서울현충원 2024.05.25

남양주 조동윤(趙東潤) 묘

조동윤(1871년~1923년)신정왕후의 조카인 조영하의 아들로병조참판과 병조판서 대리를 지내고대한제국 선포 후에는 원수부 군무국장을거쳐 육군 참장으로서 군부협판을 지냈다그 후 원수부에서 여러 요직을 지내고궁내부특진관을 거쳐 육군무관학교장을지내고 배종무관장으로 영친왕의 일본유학을 수행하고 동궁무관장이 되었다1910년 육군 부장이 되었으나 얼마 안가경술국치가 일어나고 일본 정부로부터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수작 받고 1920년대한제국의 장교를 일본군으로 임용하는과정에서 육군 부장이었기에 일본 육군중장으로 임용되어 일본군인이 되었다

경기도 2024.05.23

남양주 조영하(趙寧夏) 묘

조영하(1845년~1884년)신정왕후 조씨(조대비)의 조카이다민승호 등과 함께 흥선대원군의 실각을주도했으며 금위대장, 훈련대장을 거쳐공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병조판서를 지내고 조영, 조독 수호조약체결에 관여하였으며 임오군란 당시에는접견대관으로 청나라에 가서 파병을요청하여 사대세력의 지도자가 되었다하지만 1884년 예조판서에 부임되었으나갑신정변이 일어났고 급진개화파의 표적이되어 결국 정변 당시 살해당하였다

경기도 202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