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규
(1855년~1920년)
경술국치 이후 러시아로 이주했으며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흥동
동포 400~500명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이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하고 라오허현 지부의 책임자가 되었다
신임 총독이 부임된다는 소식을 듣고 수류탄을
구매해 배를 타고 원산으로 들어와 서울로 상경하고
거사날을 기다렸으며 1919년 9월 2일 명주 수건에
폭탄을 감싸고 남대문역으로 향했으며 오후 5시,
사이토 총독이 탄 기차가 도착하고 환영 행사를
마친 사이토 총독이 준비된 마차에 타려는 순간
폭탄을 던졌으나 사이토는 혁대에 파편 조각이
박혔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며 주위에 있던
경찰들과 신문기자 등 37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현장에서 체포되지는 않았으나 친일 경찰인
김태석에게 체포되었으며 결국 사형당하였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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