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화영
(1880년~1960년)
동학에 입교해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으며
미국인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으로
활동했고 서울 종교교회에서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진행하고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옥하였다. 이후 수표교교회,
상동교회, 연화봉교회 담임목사를 지내는 등
종교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신간회,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고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체포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해방 후 조선민족당 당수에
임명되었다가 민족자주연맹에 참여했고 김구,
김규식 등과 평양에 건너가 남북연석회의에
참여했다. 또한 건국대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정치대학의 학장이 되었고 서울 종로구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었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최고위원이
되어 활동하다 그곳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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