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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손병희(孫秉熙) 묘

손병희 (1861년~1922년) 동학농민운동 제2차 봉시 당시 북접의 지휘관으로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전투에 임했으나 우금치에서 패배하고 동학 교주 최시형이 처형당하자 교주의 직위를 이어 받았다 일본 망명 시절 이용구에게 명령해 진보회를 만들어 자신의 뜻을 실행하게 했는데 일진회와 합쳐지며 완벽한 친일파가 되자 이용구와 분리했으며 동학을 천도교라는 명칭으로 개칭한다 그 후 보성전문학교, 동덕여자의숙 등을 인수해 교주가 되는 등 교육 사업에 힘썼고 1919년 천도교의 대표로서 3.1운동을 주도했으며 기미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 결국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구리 김규식(金奎植) 묘

김규식 (1882년~1931년)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합류하여 일본군과 4번이나 접전하여 전과를 올렸다 경술국치 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북로군정서가 조직되자 사단장이 되었고 청산리 전투 당시 보병대대장이 되어 전투 승리에 큰 기여를 하였다 대한독립군단이 조직되자 총사령관이 되었고 자유시참변 후 군대를 다시 모았으며 이범석 등과 고려혁명군을 조직해 총사령관으로서 일제와의 전투에 대비해 왔으나 공산당원에게 피살당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경기도 2024.01.30

남양주 엄준원(嚴俊源) 묘

엄준원 (1855년~1938년) 엄진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엄진삼의 양자로 출계하여 양아들이 되고 순헌황귀비 엄씨의 동생이 된다 대한제국 시절 군부협판, 원수부 기록 총국장, 헌병 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순헌황귀비에게 조금의 내탕금을 얻어 진명여학교를 설립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진명여학교를 운영하며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사망할 때까지 연임하며 재직했고 그 밖에도 조선박람회 평의원, 조선나병예방협회 회원 등을 지내 훗날 친일반민족행위자에 규정되었다

경기도 2024.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