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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덕수(張德秀) / 박은혜(朴恩惠) 묘

장덕수 (1894년~1947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한청년당과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귀국했을 때 일본에 체포되어 하의도로 유배되었으나 여운형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여 부사장과 초대 주필을 지냈으며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고 난 후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대화숙 등의 친일 단체에 참여하고 내선일체에 대한 글을 쓰는 등 친일 활동을 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한국민주당의 정치부장, 외무부장을 지내며 수석총무 송진우가 암살되고 사실상 지도자가 되면서 미군정의 파트너로 활동하다가 제기동 자택 청설장을 찾아온 박광옥, 배희범에게 저격당해 암살당한다 박은혜..

서울 이광래(李光來) 묘

이광래 (1908년~1968년) 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극작가로 데뷔하였다 태평양 전쟁 시기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등의 작품을 출품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해방 후 극단 '민예'를 조직하여 좌익연극단체와 대항하며 민족예술을 지켰으며 여러 자리를 맡아 민족극의 기반을 다지고 많은 연기자들을 길러냈다

서울 서광조(徐光朝) 묘

서광조 (1897년~1964년) 조선국민회를 조직하고 전라도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19년 제주도로 거주 제한을 받고 그곳에서 여자 야학을 신설하여 교육자로 활동하며 이란 주제로 강연을 다니다 일본에게 제지를 당했다 해방 후 전남보도협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전라도 광주에서 군정 연장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서울 이병홍(李炳洪) 묘

이병홍 (1891년~1955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숨겨와 진주 3.1운동을 돕고 고향인 산청의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했으며 해방 후 반민특위 제1조사부장이 되어 친일파 청산에 힘썼으며 제2,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다 임기 중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이병홍의 묘비는 해공 신익희가 썼다

서울 13도 창의군탑

13도 창의군탑 1991년 8월 14일 동아일보사가 3.1운동 유적 보존 운동으로 건립하였다 1907년 11월 전국 13도에서 모인 의병이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망우리 일대에서 펼친 서울 진공 작전을 기념하는 탑으로 13도 창의군은 총대장에 이인영, 군사장에 허위를 추대하였다 허위는 선봉대 300명을 이끌고 이곳에서 일본군과 혈전을 벌였으나 후속 부대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퇴각하였다

남양주 김수흥(金壽興) 묘

김수흥 (1626년~1690년) 김광찬의 아들로 영의정 김수항의 형이지만 김광혁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대사간, 도승지,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영의정이 되었으나 예송논쟁으로 남인에게 공격 받고 현종이 죽자 양사의 탄핵으로 유배되었다 경신환국으로 다시 영의정이 되었으나 기사환국으로 다시 남인이 집권하자 유배되고 이듬 해 배소에서 죽었다

경기도 2023.12.19

남양주 김수항(金壽恒) 묘

김수항 (1629년~1689년) 김광찬의 아들로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치고 우의정을 지냈다 형인 영의정 김수흥이 갑인예송으로 쫓겨나자 대신 좌의정에 임명되었으며 경신환국이 일어나자 영의정이 되어 남인의 죄를 다스리고 송시열, 박세채 등을 불러들였으며 영의정을 8년 동안 지냈다 하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남인이 집권하자 탄핵되어 진도로 유배되고 사사되었다 1694년 신원이 복관되고 현종에 묘정에 배정됐다

경기도 2023.12.18

서울 창빈 안씨(昌嬪 安氏) 묘

창빈 안씨 (1499년~1549년) 본관은 안산으로 부친은 안탄대이다 중종의 후궁이 되어 영양군 이거, 이수(조졸), 덕흥군 이초, 정신옹주 등 3남 1녀를 낳았으며 이 중에서 덕흥군 이초의 아들이 선조가 되었다 선조 이후의 조선 국왕은 전부 창빈 안씨의 후손이 되었으며 묘는 동작릉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현재 그녀의 묘역에는 서울현충원이 들어서 있으며 바로 옆에 이승만, 김대중 대통령 묘가 있다

서울현충원 - 김영삼(金泳三) 묘

김영삼 (1929년~2015년) 당시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하였으며 26세에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다 민중당 원내총무, 신민당 원내총무를 지내고 제5~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79년 신민당 총재가 되어 반독재 운동에 힘썼다 이러한 행보로 정권의 눈엣가시가 되어 사상 초유로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하였다 통일민주당을 창당하고 제13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고 노태우, 김종필과 함께 3당 합당을 주도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고 역대 최다선인 9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민주자유당 총재로 활동하다 제14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군부 독재 이후의 첫 민간인 대통령으로 문민정부로 불리며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했으..

서울현충원 2023.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