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회정 터 창회정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의 후손들이 소유했던 정자로 세조가 왕이 되기 전에 즐겨 노닐었던 곳이기도 하다 남용익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창회정팔경' 으로 지어 읊었다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도 2024.02.16
서울 이용문(李龍文) 묘 이용문 (1916년~1953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군인으로 당시 참모본부인 대본영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데 이곳에서 근무한 일본 육사 출신 조선인은 홍사익과 이용문 둘 뿐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에 들어갔고 6.25 전쟁 당시 제9사단 부사단장으로 현리 전투를 펼쳤으며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이 되었다 부산정치파동 당시 이종찬 참모총장과 함께 군의 중립을 내세우며 병력 차출을 거부했으며 이로 인해 수도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그 후 남부지구 경비사령관이 되어 공비 토벌 임무를 수행하다 전북 남원 상공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졌으며 묘는 5.16 군사 정변 이후 박정희 의장의 주도 하에 수유리로 이장하였다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도 2024.02.14
서울 김성근(金聲根) 묘 김성근 (1835년~1919년) 공조, 형조, 이조, 예조판서 등을 지내고 궁내부 특진관이 되었다 1900년 이후 의정부 참정, 탁지부대신을 지냈으며 일본으로 망명한 유길준을 체포하여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100원을 기부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경술국치가 일어나고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 자작의 작위와 5만원의 은사공채가 내려오자 이를 받는 등 친일 행보를 보였다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도 2024.02.12
서울 손병흠(孫秉欽) 묘 손병흠 (?~1903년)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남동생으로 조선 말 동학의 지도자로서 최시형, 손병희 등과 함께 포교에 힘썼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형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나 우금치에서 패배했으며 후에 러시아를 몰아내기 위해 일본과 국내를 오가던 중 부산에서 사망하였다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도 2024.02.10
수의당 주옥경(朱鈺卿) 묘 주옥경 (1894년~1982년) 명월관(태화관)에서 기생으로 일하다 손병희를 만나 결혼했으며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체포될 당시 남편인 손병희 또한 체포되자 서대문형무소 옆에 단칸방을 얻어 손병희를 옥바라지 하였다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도 2024.02.08
서울 손병희(孫秉熙) 묘 손병희 (1861년~1922년) 동학농민운동 제2차 봉시 당시 북접의 지휘관으로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전투에 임했으나 우금치에서 패배하고 동학 교주 최시형이 처형당하자 교주의 직위를 이어 받았다 일본 망명 시절 이용구에게 명령해 진보회를 만들어 자신의 뜻을 실행하게 했는데 일진회와 합쳐지며 완벽한 친일파가 되자 이용구와 분리했으며 동학을 천도교라는 명칭으로 개칭한다 그 후 보성전문학교, 동덕여자의숙 등을 인수해 교주가 되는 등 교육 사업에 힘썼고 1919년 천도교의 대표로서 3.1운동을 주도했으며 기미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서명했다 결국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도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