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서성(徐渻) 묘 서성(1558년~1631년)임진왜란 당시 황정욱의 종사관이 되어함경도로 향했다가 임해군, 순화군 등과함께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탈출했고 병조정랑, 암행어사 등을 지냈다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단양에 유배되었고11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 인조반정으로풀려나 형조판서, 대사헌 등을 지냈으며이괄의 난, 정묘호란 당시 왕을 호종했고판중추부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고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경기도 2024.08.29
포천 안준생(安俊生) 묘 안준생(1907년~1951년)황해도 해주에서 안중근의 차남으로태어났으며 아버지가 하얼빈 역에서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중국으로건너가 살았으나 일본의 견제로 인해제대로 된 직장도 얻지 못해 생활고에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총독인미나미 지로가 찾아와 이토 히로부미의사당인 박문사에서 열리는 위령제에참여해 히로부미의 아들 분기치에게사과한다면 삶과 안전을 보장해준다고제안했고 안준생은 이를 수락하게 된다1939년 박문사에서 이토 분기치에게사과했고 일본은 이를 대서특필했다이는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일반조선인들에게 큰 분노를 안겨줬고'천하의 불효 자식', '친일 매국노'라며비난을 받게되었으며 김구는 해방이되면 바로 죽여야할 사람이라 분노했다해방 후 귀국하여 조용히 숨어살다가가족, 친척이 보는 앞에서 사망했다 경기도 2024.08.28
포천 박흥주(朴興柱) 묘 박흥주(1939년~1980년)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사단에배치되었는데 이때 6사단장은 김재규였다이때의 인연으로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이되자 그의 부름을 받고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수행비서관이 되었고 대령으로 진급하였다10.26사건 당시 김재규의 명령으로 당시식당에 있던 경호원들을 유성옥, 이기주와함께 사살하며 시해에 가담하였으며 결국김재규, 박선호 등과 함께 체포되어 재판을진행하던 중 현역 군인 신분이라 하여단심제로 가장 빨리 사형을 집행하였고현역 군인 신분이기에 총살형을 당하였다 경기도 2024.08.27
포천 무봉리 영조 옹주 태실 무봉리 영조 옹주 태실영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서 태어난영조의 여덟째 옹주의 태실로 본래소흘읍 무봉리 태봉 꼭대기에 태함과비석 등이 흩어져 방치되고 있던 것을마을 주민들이 모아 현재의 위치로옮겼으며 태봉 정상에는 태실이 있던자리로 보이는 곳에 구덩이가 남아 있다 경기도 2024.08.26
포천 서효수(徐孝修) 묘 서효수(1716년~1753년)서명형의 아들이나 대사헌 서명구에게입양되었으며 홍문관수찬, 부승지 등을지내다가 이성술이라는 사람이 과거에합격했는데 그가 이미 위훈으로 삭제된아버지의 증직 사실을 호봉에 기재한사실을 알고 삭과를 건의했지만 도리어파직되었고 그 해 집에서 사망하였다 경기도 2024.08.25
포천 수도군(守道君) 묘 수도군 이덕생(1393년~1449년)정종과 숙의 윤씨의 아들로 정종의7남이 되며 세종 때 수도정에 봉해지고사후인 고종 때 수도군에 추증되었다 여성군부인 여산 송씨여산 송씨 송계성의 딸로수도군과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두었다 경기도 2024.08.23
양주 서광범(徐光範) 묘 서광범(1859년~1897년)영의정을 지낸 서용보의 증손자로일찍이 박규수, 유홍기 등의 영향을 받고김옥균, 박영효와 교류하며 개화파가 되었다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보빙사 민영익의종사관으로 미국과 유럽을 순방하고 귀국했다1884년 김옥균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고좌우영사 겸 우포장이 되어 개혁을 주도하려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삼일천하로 끝났고일본으로 망명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1892년 미국 시민권을 얻고 번역관이 되어활동하다 일본 외무성의 주선으로 귀국하여제2차 김홍집 내각에서 법부대신이 되었다내부대신 박영효와 적극적으로 갑오개혁을추진했으며 특히 사법제도 근대화에 관심을들여 참형 대신 교수형 제도를 채택하였다제4차 김홍집 내각에서 학부대신이 되었으나얼마 안 가 미특명전권공사로 발령받았고아관파천으로.. 경기도 2024.08.22
양주 이준(李準) 묘 이준(1545년~1624년)덕천군 이후생의 후손으로정여립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당시도승지로서 공을 세워 평난공신 2등에책록되고 전성군에 봉해졌으며 임진왜란이일어나자 운향사가 되어 명나라 군사의군량미 조달을 맡았으나 병으로 은퇴했다그 후 병조참판,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간이되었으나 홍여순의 일파로 몰려 파직되었고광해군 때 형조판서, 공조판서, 이조판서를지냈으나 계축옥사가 일어나고 인목왕후를유폐하는 등 정사가 어지럽자 은퇴하였다 경기도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