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회 7

서울 김구(金九) 묘

김구(1876년~1949년)조선 왕조 마지막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떨어졌고 동학에 입도해 동학군 선봉장으로해주성을 공격했는데 이 사건으로 진사안태훈의 집에서 은거하며 그의 아들이었던안중근과 교류하였다. 안악군 치하포에서일본인 쓰치다를 보고 을미사변으로 죽은국모의 원한을 풀겠다며 죽여버렸고 결국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고종이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사형을 면하였다신민회에서 활동하다 105인 사건으로체포되어 1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형기 2년을 남기고 가출옥하게 되었는데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하여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되었다이후 내무총장, 국무총리 대리 등을 지내고국무령 자리에 올라 임시정부를 이끌며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 윤봉길로하여금 무장독립운동을 지도하였다임시정부가 존폐의 위기에 서..

서울 이동녕(李東寧) 묘

이동녕(1869년~1940년)독립협회에 가담해 만민공동회에 참여했고이상설, 여준 등과 함께 서전의숙을 설립했다안창호, 양기탁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여활동하다 국치 이후에 중국으로 망명했다경학사를 설립했고 신흥학교를 설립하여초대 소장으로 활동했는데 이 학교는 후에신흥무관학교로 확장하여 독립군을 양성했다무오독립선언에 참여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수립되자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이 되었다통합 임시정부가 만들어지자 내무총장이되었고 국무총리 대리를 거쳐 국무총리에정식으로 취임하며 당시 장기 궐석이었던대통령 이승만의 직무 수행을 대신하며사실상 대통령 직권을 대행하였다. 다시임시의정원 의장을 거쳐 국무령을 지냈고후엔 주석이 되어 임시정부를 이끌었다임시정부의 창립 멤버로 임시의정원 의장,국무령, 주석을 여러 차례 역임해 지내..

서울 차리석(車利錫) 묘

차리석(1881년~1945년)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신민회에 가입하여 안창호 등과 대성학교를경영하며 인재를 길렀다. 105인 사건이일어나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고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 운동에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후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임시의정원 평안도 의원을 거쳐 임시의정원부의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으며 한국독립당실무 간부로도 활동했다. 임시정부가 존폐의위기에 서게 되었을 때 김구 등과 끝까지임시정부를 지켰으며 이동녕이 주석에선출되자 비서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하다 광복 소식을 듣고 귀국 준비를 하던 중쓰러졌고 결국 귀국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 이회영(李會榮) / 이은숙(李恩淑) 묘

이회영(1867년~1932년)안창호, 전덕기 등과 함께 비밀결사신민회를 조직했으며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설립할 것을 협의하여 서전서숙을설립했고 경술국치 이후 6형제와의 회의끝에 모든 가족이 만주로 망명하였으며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한용운, 이상재 등과 함께 고종의 망명을계획하고 시종 이교영을 통해 고종에게상주하여 수락을 얻었으나 고종의 갑작스런죽음으로 망명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였다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지만의견 차이로 인해 분란이 끊이지 않자상해에 가지 않고 북경에 남아 독립운동을이어갔으며 만주사변이 일어나 중국에 있던동지들이 상해로 집결해 만든 항일구국연맹의의장에 추대되었고 중국국민당과 교섭하여독립운동 자금과 무기지원을 확약받았다주만일본군사령관을 암살하기 위해서대련으로 향하던 ..

서울현충원 2024.09.24

서울현충원 - 안태국(安泰國) 묘

안태국(1877년~1920년)양기탁, 안창호 등이 신민회를 설립하자가입하여 평안남도 총감이 되었고 신민회최고위간부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태극서관 설립에 참여했으며 청년학우회발기인으로서 초대 총무에 임명되었다1909년 이재명의 이완용 암살미수 사건이일어나자 연루자로 지목되어 2개월간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투옥되어있다가석방되었고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는일에 평안남도 대표로 참여하여 군자금모집과 이주민 모집을 분담하기도 했다1910년 안명근 사건이 일어나자 체포되어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일제가 신민회를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사건을 날조하여 신민회 회원들을 기소하자 복역중 재기소되어 징역 10년형을언도받았는데 이 재판에서 물증까지제시하며 사건이 날조되었음을 폭로하여일본 재판부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

서울현충원 2024.09.22

서울현충원 - 임치정(林蚩正) 묘

임치정 (1880년~1932년) 안창호와 함께 교포단체인 공립협회를 조직하여 간사로 활동했으며 귀국하여 대한매일신보의 회계사무 업무를 맡아 보았다 1907년 비밀 단체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혹독한 고문 끝에 윤치호, 양기탁, 이승훈, 안태국, 유동열과 함께 주모자 6인으로 지목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1914년 특사로 석방되고 이승훈 등과 3.1운동을 계획하고 평안도 일대에서 시위가 일어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01

서울 안창호(安昌浩) 묘

안창호 (1878년~193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신민회가 만들어지자 부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미국에서 흥사단을 창설하고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맡았으며 국민대표회의 부의장으로 독립운동의 통합을 주도했었으나 실패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복역했으며 그 후 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었으나 건강이 안좋아져 보석으로 풀려났고 얼마 뒤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