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 - 문태수(文泰洙) 묘 문태수(1880년~1913년)대한제국군에 들어가 복무하다 군대가해산되자 덕유산을 근거로 삼아 영남,호남 일대에서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다창의대장 이인영의 이름으로 격문이발해지자 출진해 호남창의대장으로임명되어 서울진공계획을 준비했다하지만 이인영의 부친상으로 좌절되자본래의 근거지로 복귀하여 주재소를공격해 무기를 탈취했으며 일본군과수 차례 교전을 하고 여러 지역에서활동하다 부상을 입고 결국 체포되어대구형무소에서 사형당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4
서울현충원 - 강기동(姜基東) 묘 강기동(1884년~1911년)대한제국군 기병 부위로 있다가 군대가해산되자 해산군인으로 의병을 조직했다일본 헌병대에 위장 잠입하여 근무하다가기회를 보고 잡혀있던 의병들을 석방하고무기와 탄약을 훔쳐 의병활동을 전개했다창의한북대장 연기우와 합세해 200여명의의병을 거느리고 포천에서 일본군과 싸워격파했으며 이때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일본은 500원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에열을 다하던 중 원산에서 경찰에게 잡혀용산 일본군 행형장에서 총살당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3
서울현충원 - 권병덕(權秉德) 묘 권병덕(1868년~1943년)동학농민운동 당시 손병희와 함께 교도를이끌었으며 천도교의 전제과장, 보문관장,금융관장, 이문관장 대리 등을 역임했다1919년 고종의 국장을 위해 상경했을 때3.1운동에 대한 계획을 들었고 초안을검토하고 민족대표로서 서명하였다3.1운동 당일 태화관에서 만세삼창을외친 후 체포되고 2년간 옥고를 치렀다출옥 후 천도교 감사원장 등을 지내고1927년 신간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2
서울현충원 - 나용환(羅龍煥) 묘 나용환(1864년~1936년)젊은 나이에 나인협 등과 함께 동학에가담하여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고종 국장을 위해 상경했다가 손병희,권동진, 오세창 등을 만나 3.1운동에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에 찬성하며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3.1운동 당일 태화관에 모여 만세삼창을외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1
서울현충원 - 곽재기(郭在驥) 묘 곽재기(1893년~1952년)3.1운동에 참여하고 만주로 망명했으며그곳에서 김원봉, 황상규, 이종암 등 13명과결사조직인 의열단을 만들어 단원이 되었다1920년 상해로 가서 폭탄 3개와 약품을 사서밀양청년단장 김병환에게 보냈으며 서울로들어와 동지들과 조선총독부 기관을 노리고정황을 밀탐하던 중 경찰에 동지 6명과 함께체포되었고 폭발물도 발견되어 실패하였다옥고를 치른 후 다시 망명하여 만주, 상해 등여러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 후 귀국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10
서울현충원 - 박동완(朴東完) 묘 박동완(1885년~1941년)기독교인으로 기독신보의 서기 및 주필로활동했으며 주일학교운동을 주도했다1919년 박희도로부터 3.1운동 참여를권유 받고 손병희 등과 만나 회의했으며3.1운동 당일 민족대표로서 태화관에서체포되어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출옥 후 흥업구락부에 참여하고 신간회가창립되자 총무간사로 활동했으며 일제의탄압이 심해지자 하와이로 이주하여 목사로활동하면서도 이승만이 주도하고 있던동지회에 참여하고 국내의 흥업구락부회원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았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9
서울현충원 - 홍병기(洪秉箕) 묘 홍병기(1869년~1949년)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동학이천도교로 개칭되자 천도교 도사가 되었다1919년 손병희, 권동진 등과 만나 만세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찬성했다3.1운동 당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하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 간의옥고를 치른 후에도 항일운동을 위해만주로 망명하여 고려혁명당 창당에참여하였다가 일제에 붙잡혀 다시2년간을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했다해방 후 삼일동지회 고문으로 활동하고동학농민운동 기념 행사에 참여하는 등의활동을 하다 군용 트럭에 치여 큰 부상을입고 육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8
서울현충원 - 민강(閔橿) 묘 민강(1883년~1931년)비밀 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조직했으며3.1운동 이후 한성정부 수립에 참여했다서울에서 경영하던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거점으로 자금을 모으고 상해와 연락을하다 일제에게 걸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출옥 후에도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여동화약방을 연락 거점으로 사용했고 여러단체와 다시 만세 운동을 계획했으나발각되어 체포되고 다시 옥고를 치렀다출옥 후 망명하여 상해대한교민단 등에서활동했으나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결국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7
서울현충원 - 이준식(李俊植) 묘 이준식(1900년~1966년)3.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참여했으며 정의부가 결성되고 참여하다가총사령관이던 오동진이 체포되자 그 후임이되고 국민부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1930년 중국군에 들어갔으며 임시정부와연락을 주고 받고 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됐다중국군 고급장교로 임시정부가 창사에서광저우로 이전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참모가되었다가 제1지대장이 되었고 시안 등중국 각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를 지휘했다임시정부 비서장을 지내고 광복군 총사령부고급참모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았으며그 후 국군 창설에 힘쓰고 육군사관학교장을지내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사단장이되어 많은 전투를 지휘했고 휴전 이후에는여러 보직을 지내고 육군 중장으로 전역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6
서울현충원 - 송학선(宋學先) 묘 송학선(1897년~1926년)일본인 밑에서 고용살이를 하며 일제에대한 원한이 쌓였고 항일의식에 눈을 떴다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을 숭배하고본인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기로결심하고 사진관에서 일하던 중 우연히양식도를 얻으며 이를 사용할 때를 기다렸다1926년 4월 26일 순종의 죽자 사이토 총독이조문하기 위해 창덕궁으로 올 것이라 생각해금호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일본인3명이 탄 차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달려들어 차에 타고 있던 2명을 죽이고1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경찰에게 잡혔다하지만 송학선이 죽인 인물은 총독이 아닌다른 일본인이었고 결국 사형을 당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