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 87

서울현충원 - 장진홍(張鎭弘) 묘

장진홍 (1895년~1930년) 광복단에 입단해 활동하였으며 3.1운동 당시 각지를 순회하며 일제의 학살, 고문 등을 조사해 이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일제의 중요 시설 파괴를 목적으로 폭탄을 제조하여 대구에서 거사하기로 계획하고 폭탄을 전달하는 것까지 성공했지만 상자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것을 눈치챈 은행 종업원에 의해 제지당했고 길 옆에 두었던 폭탄이 터져 은행 유리창이 깨지고 일본 경찰 수 명에게 중상을 입히는데까진 성공했으나 뒤이어 영천, 안동에서 도모한 거사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 일본을 피해 도망다녔으나 결국 은신처가 드러나 잡혔고 사형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04

서울현충원 - 최재형(崔在亨) 묘

최재형 (1860년~1920년) 부모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해 귀화했으며 어용상인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다 1907년 군대 해산으로 다수의 군인이 러시아로 모이자 군량과 군자금을 제공했고 이범윤과 함께 약 600명의 의병을 모아 대장이 되어 경원의 신아산, 회령의 영산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고 노우키에프스크로 돌아왔다 재정난에 빠진 대동공보를 인수했으며 한인중학교를 설립하고 한족민회 회장이 되었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설립되자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되었으나 사양하였고 의병들을 모아 일본에 저항하다 체포되어 총살당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03

서울현충원 - 임치정(林蚩正) 묘

임치정 (1880년~1932년) 안창호와 함께 교포단체인 공립협회를 조직하여 간사로 활동했으며 귀국하여 대한매일신보의 회계사무 업무를 맡아 보았다 1907년 비밀 단체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혹독한 고문 끝에 윤치호, 양기탁, 이승훈, 안태국, 유동열과 함께 주모자 6인으로 지목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1914년 특사로 석방되고 이승훈 등과 3.1운동을 계획하고 평안도 일대에서 시위가 일어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01

서울현충원 - 박재혁(朴載赫) 묘

박재혁 (1895년~1921년) 의열단장 김원봉과 연락이 되어 의열단에 가입하였으며 짐 속에 폭탄을 숨기고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부산경찰서를 찾아가 평소 안면이 있던 서장 하시모도를 만나 진기한 고서를 보여준다며 봇짐을 풀고 그 안에 있던 폭탄을 꺼내며 서장을 죽이려는 의도를 밝힌 다음 폭탄을 던졌으나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둘 다 중상을 입고 붙잡혔다 체포 후 사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어 고문과 폭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다가 단식을 하던 중 결국 옥사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31

서울현충원 - 이탁(李鐸) 묘

이탁 (1889년~1930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강습소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고종의 국장 행렬이 지나갈 때 이완용 등 매국 7적을 암살하려 했으나 순종이 가까이 있어 실행하지 못했다 관전현에서 통합 독립운동 단체가 만들어지자 참여하고 임시정부가 광복군사령부라고 명칭을 인준하고나서 참모장에 임명되었다 독립운동 단체 통합을 위해 국민대표회주비회가 열리자 서기가 되어 대회를 준비했으며 만주에서 각자 활동하던 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하자는 3부통일안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30

서울현충원 - 현익철(玄益哲) 묘

현익철 (1890년~1938년) 3.1 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으로 망명 가 일제의 기관 파괴와 밀정 숙청에 진력하다 체포되어 3년을 복역하고 다시 망명하였다 통의부에 참여하여 위원장이 되었으며 고려혁명당 결성에 참여하고 여러 단체가 통합되어 국민부가 결성되자 중앙집행위원장 추대되었다 그 후 조선혁명당을 결성해 중앙책임비서가 되는 등 활동을 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전하자 함께 옮겨 활동하였다 1938년 5월 창사에서 김구, 지청천, 유동열 등과 회합을 하고 있을 때 이운한이 총을 쏘았고 김구와 유동열은 중상, 지청천은 경상을 입었으나 현익철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절명하였고 임시정부에서는 그의 노력과 업적을 기려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29

서울현충원 - 나중소(羅仲昭) 묘

나중소 (1867년~1928년)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여 육군 정위로 복무하다 군대가 해산되고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선발되어 유학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으며 왕청현 사관양성소의 교성대장이 되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20년 북로군정서의 참모장이 되어 총사령관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 전투를 이끌어 대승을 거두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신민부가 조직되자 참모부 위원장을 맡았고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28

서울현충원 - 안병찬(安炳瓚) 묘

안병찬 (1879년~1921년)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자 변호사 자격으로 여순 법정으로 향했으나 일본 측에서 관선변호사만 인정하고 안병찬의 변호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같은 해 이재명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이면우와 변호를 담당하였다 1911년 일명 '105인 사건' 당시 잡혀 고초를 겪었으며 그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청년단 총재가 되어 활동하다 다시 체포되어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병보석으로 가출소하고 바로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법무처장을 지내고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반대파인 상해파에게 암살당했다 (마적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음)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27

서울현충원 - 지달수(池達洙) 묘

지달수 (1909년~1969년) 독립운동가 지청천의 맏아들로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이었던 아버지의 밑에서 복무하였으며 쌍성보 등 중국 각지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여 광복군 제2지대 2구대장에 임명되었고 후에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광복군이 개편되자 제2지대 2구대 구대부로 배속되어 훈련 및 항일 선전에 힘썼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26

서울현충원 - 최수봉(崔壽鳳) 묘

최수봉 (1894년~1921년) 1919년 밀양 장날에 만세 시위를 주도했으며 그 후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투탄 의거 소식을 듣고 거사를 계획했으며 그 해 12월에 밀양경찰서장이 훈시를 위해 경찰서 직원 19명을 모아놓았을 때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었고 다시 하나를 던졌으나 위력이 약해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 후 도주했으나 결국 체포되어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