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 90

서울현충원 - 강우규(姜宇奎) 묘

강우규(1855년~1920년)경술국치 이후 러시아로 이주했으며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흥동동포 400~500명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이고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가입하고 라오허현 지부의 책임자가 되었다신임 총독이 부임된다는 소식을 듣고 수류탄을구매해 배를 타고 원산으로 들어와 서울로 상경하고거사날을 기다렸으며 1919년 9월 2일 명주 수건에폭탄을 감싸고 남대문역으로 향했으며 오후 5시,사이토 총독이 탄 기차가 도착하고 환영 행사를마친 사이토 총독이 준비된 마차에 타려는 순간폭탄을 던졌으나 사이토는 혁대에 파편 조각이박혔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며 주위에 있던경찰들과 신문기자 등 37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현장에서 체포되지는 않았으나 친일 경찰인김태석에게 체포되었으며 결..

서울현충원 2024.05.29

서울현충원 - 신팔균(申八均) / 임수명(任壽命) 묘

신팔균(1882년~1924년)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여육군 정위까지 올랐으나 1907년 군대가해산당하자 독립군을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여러독립운동가들과 무오독립선언에 서명하였다지청천, 김경천 등과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독립군 양성에 힘썼으며 1922년 대한통의부가결성되자 군사위원장 겸 총사령관이 되어일본군과 수 차례 전투를 벌여 성과를 올렸다의용군의 일부가 분리되어 다른 독립단체에참여하자 이를 규합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독립군 훈련지인 흥경현 왕청문 이도구에서무관학교 생도와 독립군의 합동 군사 훈련을주도하던 중 일본군과 매수된 장쭤린군의습격을 받았고 결국 흉탄에 전사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임수명(1894년~1924년)1912년 서울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경찰에..

서울현충원 2024.05.28

서울현충원 - 권동진(權東鎭) 묘

권동진(1861년~1947년)평소 유길준, 우범선 등 개화파 인사들과친하게 지냈는데 1895년 을미사변에 연루되어친형 권형진 등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이때 동학 교주로 망명 중이었던 손병희를만났으며 손병희와 함께 귀국하여 천도교가창건될 당시 대도주가 되어 핵심 인물이 되었다대한제국 시기에 계몽 운동을 하였으나결국 대한제국은 멸망했고 경술국치 후에는천도교 지도자로서 활동하다 손병희, 최린 등과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고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체포되어옥살이를 살았으며 출옥 후에도 천도교 지도자로6.10 만세 운동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줬으며1927년 신간회가 창립되자 부회장을 맡았다해방 후에는 임시정부환영준비위원장을 맡고신한민족당을 창당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5.27

서울현충원 - 이종일(李鍾一) 묘

이종일(1858년~1925년)제국신문을 순 한글로 창간하였으며그곳에서 사장과 기자로서 개화, 계몽 등에앞장섰고 황성신문, 만세보 등에서도 활동했다1905년 천도교에 입교했으며 '천도교회월보'의월보과장을 지내고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의사장을 지내며 각종 천도교계 서적을 간행했다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보성사에서 극비로 독립선언문 3만 5천장을인쇄하는데 성공하고 전국에 배포하였다이로 인해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 받고복역하다 2년 6개월만에 가출옥하였으며1922년 보성사 사람들, 천도교 교인 등과제2의 3.1운동을 계획하고 실천하던 중에발각되어 실패하고 영양실조로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5.26

서울현충원 - 김상옥(金相玉) 묘

김상옥(1889년~1923년)3.1운동이 일어나고 혁신단을 조직하고혁신공보를 발행하고 배포하여 독립에대한 정신을 사람들에게 고취시켰다김동순 등과 암살단을 조직하여 일제의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할 계획을하다가 발각되어 상하이로 망명하였다이때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1년 귀국해군자금을 모으고 정세를 파악했으며1922년 폭탄, 권총을 휴대하고 잠입해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건물의 일부가 파손되는 등 아수라장을만들고 매부 고봉근의 집에 몸을 숨겼다하지만 은신처가 일본 경찰에게 탄로나자두 손에 권총을 들고 총격적을 벌이며도주했고 추격을 따돌리는데 성공했다효제동 이혜수의 집에서 동상 등을 치료하며은신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마저도 발각되고다시 총을 들고 도주했으나 이번에는수가 너무 많았고 무려 약 3..

서울현충원 2024.05.25

서울현충원 - 권준(權晙) 묘

권준 (1895년~1959년) 의열단이 창단 될 당시 참여하고 종로경찰서·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 의거 등 의열단의 활동 때 자금 조달 활동을 하다 국내에서 잡혀 옥고를 치렀다 황푸군관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조선의용대의 비서장으로 활동하다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차장이 되었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자 육군 대령으로 특채되어 제106여단장, 초대 수도경비사령관, 제103사단장, 서부지구경비사령관 등을 지내고 육군 소장으로 전역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3

서울현충원 - 조경환(曺京煥) 묘

조경환 (1876년~1909년) 1907년 의병을 일으켜 김태원 의병진의 좌익장이 되었으며 함평, 장성, 영광 등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며 성과를 올리고 '호남창의대장'이라 칭하며 각 지역의 향교에 독립을 호소하는 격문을 발송하였다 그 후에도 일본군과 싸워 성과를 올리던 중 광주군 소지면 어등산에서 격전 중 전사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2

서울현충원 - 신돌석(申乭石) 묘

신돌석 (1878년~1908년) 1895년 을미의병이 봉기하자 19세의 어린 나이로 의병을 이끌고 거사했으며 1905년 을사의병이 봉기하자 사람을 모아 다시 의병운동을 재개하였다 1907년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전국에서 의병들이 양주로 모여 13도창의군이 결성될 당시에 신돌석은 경상도 의병을 대표해 1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올라왔으나 그가 평민의병장이라는 이유로 참여시키지 않아 결국 경상도로 다시 돌아와 따로 의병 운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겨울이 되고 봄을 기약하며 부하 집에 은신하고 있었지만 이들 형제의 배신으로 인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1

서울현충원 - 나인협(羅仁協) 묘

나인협 (1872년~1951년) 1894년 나용환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으며 그 후 천도교 도사가 되었다 1919년 손병희, 권동진 등에게 3.1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민족대표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으며 3.1운동 당일에 민족대표로서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서 낭독식에 참여하고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그 후로는 천도교 도사로서 활동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0

서울현충원 - 박승환(朴昇煥) 묘

박승환 (1869년~1907년) 대한제국 육군 참령으로 복무하던 중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 황제를 강제로 양위시켜려 하자 거사하여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황제에게 해가 끼칠 것을 염려하여 거사하지 못하였다 대한제국군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이 되었고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 해산 통고를 위해 새벽에 대대장 이상의 장교를 통감 관저로 불렀으나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으며 결국 군대 해산식을 강행하자 분개하며 대대장실에서 유서를 남기고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다음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를 본 장병들은 분개하며 탄약고를 부수고 무장 봉기하여 일본과 전투를 벌였으며 상당수의 군인이 의병으로 전환되어 의병 운동이 강화되는 기틀을 만들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