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박태순 묘 박태순(1966년~1992년)한신대학교 철학과 학생으로민주화 운동 및 노동 운동가로 활동했다소규모 영세사업장에 위장 취업 하는 등노동 권익을 위한 활동을 하다 공안 기관의미행, 감시를 당하던 중 부천시 수영기계에서퇴근한 후 행방불명 되었고 2001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시흥역 내 무단횡단을하다 열차에 치여 두부파열로 사망했다고 한다또한 지문불발견으로 신원불명자로 분류되어다른 곳에 무연고자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었다 경기도 2024.10.04
포천 이옥(李沃) 묘 이옥(?~1409년)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군사에 능하여 강릉도절제사로 있을 때침입한 왜구를 크게 격퇴하는 공을 세웠다아버지 이춘부가 신돈 일당으로 몰려처형당해 노비가 되어 추방되었다가우왕 때 복권되어 좌상시에 올랐고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세우는데가담하여 이성계 일파에게 공격을받아 파직되었으며 조선 건국 이후물러나 있다가 태조 때 다시 복귀하여태종 때까지 관직을 이어가기도 했다 경기도 2024.09.15
포천 이휘(李徽) 묘 이휘(?~1456년)이사검의 아들로 세조의 즉위에협력한 공으로 좌익공신 3등에 봉해지고공조참의를 지냈으나 성삼문, 박팽년 등과단종 복위를 도모할 때 모의에 가담하여일이 발각되었을 당시 사육신과 함께거열형을 당하고 가산이 적몰되었다 경기도 2024.09.13
포천 이사검(李思儉) 묘 이사검(?~1446년)강릉대첩을 이끈 이옥의 아들이다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자 그를보좌했고 왜구가 쳐들어와 병선을불사르는 짓을 하자 황해도수군첨절제사에임명되었으며 조선절제사가 되어 왜구를견제했으나 왜구가 식량을 요구하며 교묘히싸움을 하지 않는 술책을 써오자 이들을강력히 물리치지 않은 죄로 변방에 충군됐다명나라에 청해(매)를 바치기위해 요동을지나다 매가 죽는 일이 발생하여 죽은 매를가지고 북경의 대궐에서 사죄하니 명나라황제가 가상히 여겨 장군모를 하사했다 경기도 2024.09.12
포천 청풍군(淸豊君) 묘 청풍군(1890년~1950년)이름은 이해승이다월산대군의 후손인 이건용의 아들이나후사 없이 사망했던 풍선군 이한용의사후 양자가 되며 가까운 황족이 되었다1904년 양할아버지 청안군이 사망하자누동궁 궁주가 되었으며 경술국치 이후조선귀족 후작 작위와 은사공채를 받았다해동은행 대주주, 일선산금 주식회사 이사등을 지냈으며 조선귀족회 회장을 지냈다조선 귀족 대표로 미나미 지로 총독에게육군, 해군 각각 1만원의 국방헌금을 내고조선인 징병제도를 보며 충성스러운 황국신민으로서 대동아공영의 지도자가 되게하려는 어버이의 심정이라며 찬양했다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평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징병령실시감사회 발기인을 지냈다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곧풀려났고 6.25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경기도 2024.09.09
포천 풍선군(豐善君) 묘 풍선군(1875년~1890년)이름은 이한용이다본래 소현세자 후손인 이재철의아들이지만 후사가 없던 청안군의양자로 들어와 왕실의 가까운 친척이되었지만 양아버지인 청안군보다일찍 죽어 이해승을 사후 양자로 들였다 경기도 2024.09.08
포천 청안군(淸安君) 묘 청안군(1851년~1904년)초명은 이순달, 이름은 이재순이다본래 경창군 후손인 이휘응의 아들이지만영평군의 양자로 누동궁 궁주가 되었다형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특사로일본에 파견되기도 했다. 시종원경을지내면서 친일 정권을 붕괴시키고 고종을궁궐에서 구출하기 위해 춘생문 사건을일으켰으나 실패했고 결국 체포되어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면제 받고3년 동안 향리로 방축되는 벌을 받았다풀려나 정계에 복귀해 궁내부대신을지냈고 청안군에 봉해졌으며 1902년전권대사로 유럽 각국을 방문하였다 경기도 2024.09.07
포천 영평군(永平君) 묘 영평군(1828년~1902년)초명은 이욱, 이름은 이경응이다전계대원군과 첩 이씨 사이에서태어났으며 철종의 이복 형이다전계대원군의 서자로 가정사까지겹쳐 왕족의 작위를 받지 못했으나철종이 왕으로 즉위하고 이복 형인회평군이 후손 없이 죽었기 때문에전계대원군의 상속자로 누동궁의궁주가 되었으며 종척집사를 지내고판종정경, 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경기도 2024.09.06
포천 회평군(懷平君) 묘 회평군(1827년~1844년)이름은 이명이고, 초명은 이원경이다전계대원군과 완양부대부인 최씨에게서태어난 장남으로 유일한 정실 소생이다자신의 가정사에 따라 아버지와 똑같이빈농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아버지가 죽자형제들을 챙기고 서로 공경하며 살았다하지만 민진용이 주축이 되어 본인을왕위에 추대하려다 발각되는 사건이벌어졌고 결국 탄핵당해 사사당하였다훗날 이복동생이 철종으로 즉위하자군의 작위를 받고 추봉되어 왕족이 되었다적장자였지만 후손이 없어 누동궁은다른 이복동생인 영평군이 물려받았다 경기도 202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