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묘역 4

서울현충원 - 채명신(蔡命新) 묘

채명신 (1926년~2013년) 6.25전쟁에 참전하여 활약했으며 특히 '백골병단'이라는 게릴라 부대를 이끌며 다수의 전과를 올렸다 제5사단장 당시 5.16 군사 정변에 적극 가담하였고 초기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전역을 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계속 군에 남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파견이 결정되자 주월 한국군 사령관에 임명됐다 이후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으며 세상을 떠날 당시 유언으로 파월 장병이 있는 묘역에 묻어달라고 요청하여 장군임에도 사병 묘역에 안장되었다

서울현충원 2024.02.27

서울현충원 - 박윤관 묘

박윤관 (1956년~1979년) 12.12 군사 반란 당시 반란군에 넘어간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일병으로 우경윤 대령의 지휘 하에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점령하여 정승화가 납치된 후 공관 초소 경비 임무를 맡았다 12월 13일 새벽 공관 경비 병력인 해병대가 초소를 탈환하기 위한 과정에서 총격전이 일어났고 그때 머리에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사후 1계급 특진되어 상병이 되었다

서울현충원 2024.02.23

서울현충원 - 정선엽(鄭善燁) 묘

정선엽 (1956년~1979년) 조선대학교 전기공학과 2학년을 마치고 1977년 입대하여 국방부 헌병으로 복무했다 1979년 전역을 3개월 정도 앞둔 상황에서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났고 정선엽은 처음에 국방부 보안실 경계 근무에 배치되었으나 요충지인 B-2 벙커에 일병 후임이 배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벙커 초병 근무를 자원하여 배치되었다 그렇게 근무 중 B-2 벙커를 장악하기 위해 제1공수특전여단의 공수부대원들이 계단을 따라 내려와 정선엽과 마주쳤고 공수부대원들은 총을 건네달라고 요구했지만 "상관의 지시 없이 총을 줄 수 없다"라며 거절했다 결국 몸싸움이 일어났고 그와 몸싸움을 하던 대위가 그에게 총을 발사, 뒤이어 이어진 공수부대원들의 사격으로 전사했다 사후 44년 만에 모교인 조선대학교에서 명예..

서울현충원 2024.02.22

서울현충원 - 김오랑(金五郞) 묘

김오랑 (1944년~1979년) 육군사관학교를 25기로 졸업했으며 1979년 육군특수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12.12 군사 반란 당시 반란군은 정병주 특수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제3공수여단의 박종규 중령 부대를 투입시켰다 그럼에도 정병주가 끝까지 항전하려고 하자 김오랑은 정병주와 함께 끝까지 맞서 싸웠고 결국 총 6발의 총알을 맞고 전사했다 전사 후 시신은 특수전사령부 뒷산에 가매장되었다가 후에 현충원으로 이장되었고 김오랑의 부인인 백영옥 여사는 시력약화증을 앓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완전히 실명되고 만다 사후 소령에서 중령으로 추서되었다

서울현충원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