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군정서 4

서울 조성환(曺成煥) 묘

조성환(1875년~1948년)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으나군부의 부패함을 숙청하기 위해 시도하다발각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고 후에 감형된 뒤칙령으로 풀려나 육군 참위가 되었으나사직하고 안창호 등과 신민회에 가입했다중국으로 망명하여 무오독립선언에 참여했고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군무차장이되어 활동했다. 서일, 김좌진 등과 함께북로군정서를 조직해 군사부장에 취임하여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대한독립군단부총재에 취임해 무장독립운동을 이끌었다신민부가 조직되자 외교위원장이 되었고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군무총장이되어 중국 정부와 협의해 한국광복군 창설에크게 일조하였다. 한국광복군 대원수부의군무부장, 최고원수부 판공처장이 되어일본과의 전쟁을 준비하던 중 광복이 되자귀국하여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 성균관..

서울현충원 - 이범윤(李範允) 묘

이범윤(1856년~1940년)1902년 간도시찰원, 1903년 간도관리사가되어 간도 지방의 한인 보호에 힘썼다특히 사포대를 조직하여 군사훈련을시켰는데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과 교전을벌어기도 하는 등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다연해주로 망명하였으며 동의회 부총장을지내고 권업회가 조직되자 총재로 추대됐다1912년 부대를 조직해 회령 등을 공격했으며3.1운동이 일어나고 군사를 더 모집하여의군부 총재가 되고 서일의 북로군정서에합류하여 청산리전투 등에 기여하였으며서일의 뒤를 이어 총재가 되었다가 자유시참변으로 잠시 독립군에 타격이 생기자정비에 들어갔으며 신민부가 조직되자참의원 원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5.31

서울현충원 - 나중소(羅仲昭) 묘

나중소 (1867년~1928년)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여 육군 정위로 복무하다 군대가 해산되고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선발되어 유학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으며 왕청현 사관양성소의 교성대장이 되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20년 북로군정서의 참모장이 되어 총사령관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 전투를 이끌어 대승을 거두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신민부가 조직되자 참모부 위원장을 맡았고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28

구리 김규식(金奎植) 묘

김규식 (1882년~1931년)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합류하여 일본군과 4번이나 접전하여 전과를 올렸다 경술국치 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북로군정서가 조직되자 사단장이 되었고 청산리 전투 당시 보병대대장이 되어 전투 승리에 큰 기여를 하였다 대한독립군단이 조직되자 총사령관이 되었고 자유시참변 후 군대를 다시 모았으며 이범석 등과 고려혁명군을 조직해 총사령관으로서 일제와의 전투에 대비해 왔으나 공산당원에게 피살당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경기도 2024.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