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26

서울현충원 - 장인환(張仁煥) 묘

장인환(1876년~1930년)을사늑약 이후 독립투쟁을 하기로결심해 기회를 엿보던 중 통감부의외무 고문이었던 더럼 스티븐스가'일본의 지배는 한국에게 유익하다'라는성명을 발표하자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 페리역에서스티븐스를 기다리던 중 그가 나타나자그를 저격하려 하던 중 우연히 같은 목표로그 자리에 있던 전명운이 먼저 스티븐스를저격하였다. 하지만 그의 총은 불발이 났고전명운은 권총으로 스티븐스의 얼굴을가격하며 몸싸움을 벌이게 되었다이를 본 장인환은 권총으로 스티븐스를저격했고 한 발은 전명운의 팔에 맞고두 발이 스티븐스의 가슴에 명중하며그를 암살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재판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 받고복역하다 1919년 가석방되었고 귀국해결혼까지 하였으나 일제에 감시에 못이겨다시..

서울현충원 2024.09.19

서울현충원 - 민종식(閔宗植) 묘

민종식(1861년~1917년)민영상의 아들로 명성황후와 같은민진후의 후손이 된다.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을미사변이일어나자 충청남도 정산에 은둔했다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정산에서의병을 일으켰으며 연합의병의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충청남도 서부 일대를 점령하고 서부의중심지인 홍주까지 점령하였는데 홍주는서울과의 교통로 때문에 일제에게 큰위협이었고 이에 일제는 서울에 있던일본군까지 파견하여 홍주성에서 혈전을벌였고 결국 의병부대는 패하고 말았다민종식은 몸을 피하고 다시 의병을 모아재기를 도모하다 1906년 체포되었고결국 진도로 유배되었으나 왕실 척족이라는 신분으로 금방 풀려났다하지만 악형의 여독으로 사망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9.18

서울현충원 - 남자현(南慈賢) 묘

남자현(1872년~1933년)19세 때 김영주와 혼인하였으나 6년 후남편이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전사하자3대독자인 유복자를 기르며 시부모를 모셨다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에 참여했고여성을 계몽하는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1924년 채찬, 이청산 등과 사이토 총독을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미수에 그쳤고김동삼이 하얼빈에서 체포되자 그를탈출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1933년 이규동 등과 주만일본대사였던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할 계획을 하고연락, 무기운반 등의 임무를 맡아 변장하여 하얼빈 교외 정양가를 지나다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었고 6개월 동안 갖은혹형을 받으면서도 단식 투쟁을 전개하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하얼빈에서 순국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9.17

포천 이옥(李沃) 묘

이옥(?~1409년)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군사에 능하여 강릉도절제사로 있을 때침입한 왜구를 크게 격퇴하는 공을 세웠다아버지 이춘부가 신돈 일당으로 몰려처형당해 노비가 되어 추방되었다가우왕 때 복권되어 좌상시에 올랐고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세우는데가담하여 이성계 일파에게 공격을받아 파직되었으며 조선 건국 이후물러나 있다가 태조 때 다시 복귀하여태종 때까지 관직을 이어가기도 했다

경기도 2024.09.15

포천 이사검(李思儉) 묘

이사검(?~1446년)강릉대첩을 이끈 이옥의 아들이다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자 그를보좌했고 왜구가 쳐들어와 병선을불사르는 짓을 하자 황해도수군첨절제사에임명되었으며 조선절제사가 되어 왜구를견제했으나 왜구가 식량을 요구하며 교묘히싸움을 하지 않는 술책을 써오자 이들을강력히 물리치지 않은 죄로 변방에 충군됐다명나라에 청해(매)를 바치기위해 요동을지나다 매가 죽는 일이 발생하여 죽은 매를가지고 북경의 대궐에서 사죄하니 명나라황제가 가상히 여겨 장군모를 하사했다

경기도 2024.09.12

포천 청풍군(淸豊君) 묘

청풍군(1890년~1950년)이름은 이해승이다월산대군의 후손인 이건용의 아들이나후사 없이 사망했던 풍선군 이한용의사후 양자가 되며 가까운 황족이 되었다1904년 양할아버지 청안군이 사망하자누동궁 궁주가 되었으며 경술국치 이후조선귀족 후작 작위와 은사공채를 받았다해동은행 대주주, 일선산금 주식회사 이사등을 지냈으며 조선귀족회 회장을 지냈다조선 귀족 대표로 미나미 지로 총독에게육군, 해군 각각 1만원의 국방헌금을 내고조선인 징병제도를 보며 충성스러운 황국신민으로서 대동아공영의 지도자가 되게하려는 어버이의 심정이라며 찬양했다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평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징병령실시감사회 발기인을 지냈다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곧풀려났고 6.25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경기도 2024.09.09

포천 청안군(淸安君) 묘

청안군(1851년~1904년)초명은 이순달, 이름은 이재순이다본래 경창군 후손인 이휘응의 아들이지만영평군의 양자로 누동궁 궁주가 되었다형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특사로일본에 파견되기도 했다. 시종원경을지내면서 친일 정권을 붕괴시키고 고종을궁궐에서 구출하기 위해 춘생문 사건을일으켰으나 실패했고 결국 체포되어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면제 받고3년 동안 향리로 방축되는 벌을 받았다풀려나 정계에 복귀해 궁내부대신을지냈고 청안군에 봉해졌으며 1902년전권대사로 유럽 각국을 방문하였다

경기도 2024.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