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21

서울 정의공주(貞懿公主) / 안맹담(安孟聃) 묘

정의공주(1415년~1477년)조선 세종과 소헌왕후의 딸로위로 언니 정소공주가 있지만 요절하여실질적으로 세종의 장녀이자 유일한적녀 역할을 하였고 남편인 안맹담과의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실록에 따르면총명하고 지혜로워 역산에 능했다고 하며야사에 따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변음과 토착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아버지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드는 일에 협력했다고 한다 안맹담(1415년~1462년)안망지의 아들로 1428년 세종의 왕녀인정의공주와 혼인하여 죽성군에 봉해졌다가연창군에 봉해지고 훗날 연창위로 개봉됐다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원종공신 1등에책록되었고 초서, 사어, 음률, 약물에 능했다고 한다

서울 의정궁주 조씨 묘(義貞宮主 趙氏) 묘

의정궁주 조씨(?~1454년)본관은 한양으로 부친은 조뢰이다태종의 후궁으로 태종이 상왕으로 있던1422년 변계량의 건의로 간택 후궁을들여오게 되었다. 태종은 자신이 나이가들었다는 이유로 거절했으나 결국 조뢰의딸이 간택되었고 아니다 다를까 태종의걱정대로 그해 5월에 태종이 세상을 떠났다결국 제대로 혼례도 치르지 못한채 과부가되었고 세종이 부왕을 위해 뽑은 후궁이니'빈'으로 책봉하겠다고 했으나 조정에서혼인하는 예를 갖춘적이 없다고 반대했고결국 궁주로 남게되었다. 당연히 자식은 없다

서울 휘순공주(徽順公主) / 구문경(具文璟) 묘

휘순공주(1491년~1524년)조선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의 딸로연산군의 장녀로 남편인 구문경과의사이에서 1남을 두었다. 중종반정으로아버지가 폐위되자 서인이 되었으며시아버지이자 반정 공신이었던 구수영의청으로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다. 하지만류순 등의 청으로 몇 년후에 다시 부부가되었으며 빈 집을 사급 받기도 하였다(혼인 후 작호가 휘신공주로 바뀌었다고 한다) 구문경영응대군의 사위인 구수영의 아들로휘순공주와 혼인하여 능양위에 봉해졌으나중종반정 이후 서인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아버지의 청으로 부인과 이혼하게 되었다가류순 등의 청으로 다시 합쳐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