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16

서울현충원 - 원세훈(元世勳) 위패

원세훈(1887년~1959년)대동법률전문학교를 다녔으나 비밀결사를조직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5개월 동안 옥고를치르고 가석방되었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간도모록구에 모록의숙을 설립해 청년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다 일본영사관을 피해 도주했다철혈광복단을 조직했고 이동휘, 문창범 등과전로한족회중앙총회를 조직해 재정부장으로활동했으며 대한국민의회 부의장에 취임했다국민대표회의 당시 창조파에 가담했고 경찰에신채호 외 5인이 잡혀 구출운동을 전개했으나체포되었다. 석방 후 다시 망명을 시도했으나실패했고 계몽운동을 하며 총독부를 비판하다광복을 맞이했다. 이후 고려민주당을 조직하고송진우와 국민대회준비회를 만들어 부위원장에취임했으며 한국민주당을 조직해 총무가 되었고송진우가 암살당하자 임시 수석총무가 되기도하였다. 좌우합작위원회, ..

서울현충원 2025.04.10

서울현충원 - 최동오(崔東旿) 위패

최동오(1892년~1963년)일찍이 동학교 입교해 강도사로 활동했으며3.1운동이 일어나자 의주에서 만세운동을주도하였다. 의주 천도교단의 후원을 받고천도교 대표로 임시정부로 넘어갔으며 내무부지방국장 등을 지냈다. 또한 김동삼, 현익철 등과정의부에서 활동했고 후에 국민부가 결성되자외교위원장에 선임되었다. 국민부 조직 개편으로조선혁명당이 창당되자 국제부장을 역임했고김원봉, 김규식 등과 민족혁명당을 창당했으며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해 의정원 부의장,법무부장 등을 역임하다 광복을 맞이했다광복 후 귀국하여 과도입법의원 부의장을지내고 민족자주연맹 소속으로 정치활동을이어가다 6.25전쟁이 일어나 납북당하였다북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을지내며 활동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4.09

서울현충원 - 정인보(鄭寅普) 위패

정인보(1893년~1950년)학자이자 우국지사인 이건방 밑에서 양명학을수학했으며 상해로 건너가 박은식, 신규식,신채호, 문일평 등과 함께 동제사를 결성했으나부인이 사망하여 다음 해에 귀국하여 충청도에정착하였다. 이때 학문에 몰두하여 양명학은물론이고 본인의 학문관의 기초가 이루어졌다1923년 연희전문학교에서 한문과 조선문학을강의했고 동아일보, 시대일보 논설위원으로활동하며 등을 연재하고다산 정약용 서거 100주년에 맞춰 안재홍과를 교열, 간행하고 기념회에발기인으로 참가하여 전국 순회 강연을 돌았다또한 사상이 근간을 이루는 대표적인 저술인을 발표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내선일체 정책 등으로 조선어강좌가 폐지되어강사직을 사임하고 은거하다 광복을 맞았다해방정국에서 남조선민주의원에 선출되었으나곧 사퇴했고 국학대학 ..

서울현충원 2025.04.08

서울현충원 - 엄항섭(嚴恒燮) 위패

엄항섭(1898년~1962년)경기도 여주시 출신으로 일찍이 중국으로망명해 임시정부에 참여했고 항저우에 있는지강대학에서 수학했다. 상해한인청년동맹회발기인, 집행위원, 재정부장, 상해 한인교민단의경대장을 지냈고 한국독립당 선전부장이되었다.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임시정부가충칭으로 옮긴 후 선전부장과 김구 판공비서를지냈으며 해방 후 제1진으로 귀국하였다. 이후김구 곁에서 정치 활동을 하며 비상국민회의선전위원장 등을 지내고 남북연석회의 당시김구와 함께 참석하였으나 김구가 암살 되고영향력을 잃어갔다. 6.25전쟁이 일어날 당시서울에 있다가 납북되었고 북한에서 안재홍,조소앙 등과 함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조직하여 상무위원으로 활동했으나 1958년반당·반혁명 혐의로 체포되었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4.07

남양주 이춘호(李春昊) 초혼 묘

이춘호(1893년~1950년)족보명은 이동순(李東淳)이다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교 수학과,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대학원수학과를 졸업했고 1921년 한국인 최초로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어 1924년박사 학위 과정을 이수했으나 부친의 병환으로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연희전문학교 수물과 교수를 지냈으며해방 후 제2대 서울대학교 총장에 취임해최초의 한국인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다당시 학교 내 좌우익 학생들의 대립이계속되자 '사상의 자유는 인정하지만학원 내 정치적 언행은 용인할 수 없다'고말했으며 서울대 종합화를 위해 힘썼으나문리과대학과 법과대학 사이 교수연구실분쟁 등의 난제를 남기고 사임하게 되었다반민특위 처별 특별재판부의 재판장을지냈으며 문교부차장 등을 지냈다 6.25전쟁당시 납..

경기도 2024.10.31

양주 백숙양 묘 (현상윤 부인)

현상윤(1893년~1950년)1914년 일본 와세다대학을 입학해1918년 졸업하고 귀국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교사로 부임하여 교육자로 활동하였다3.1운동 당시 송진우, 최린, 최남선 등과중앙학교 숙직실에서 거사를 도모하고기독교와 천도교가 참여하는 과정에서중요한 역할을 하며 민족대표로서 서명하려고했으나 어린 사람은 보호해야한다는주장으로 서명하지 않고 주모자 48인으로분류되어 체포되고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그 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내고재단법인 중앙학원 이사, 조선물산장려회 이사등을 지내다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임전보국단 발기인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친일 강연, 친일 글 등을 기고하였다해방 후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던 중고려대학교로 인가되면서 초대 총장이 되었다그러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사망했다

경기도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