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도 112

서울 김병로(金炳魯) 묘

김병로 (1887년~1964년) 일제강점기 당시 변호사로 독립운동가들을 무료 변론하여 허헌, 이인 등과 함께 3대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 등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해방 후 남조선과도정부에서 사법부장을 지냈으며 정부 수립 후 제1~2대 대법원장을 지내며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 이준(李儁) 묘

이준(1859년~1907년)한성재판소 검사보로 활동했으며한일의정서 체결 후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대한협동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을 지냈다친일 단체 일진회가 조직되자공진회를 조직해 회장이 되었으며을사늑약 등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다고종의 명으로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으나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자 신문사 등에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렸다하지만 열강의 태도에 격분한 나머지헤이그에서 순국하였다그의 유해는 1963년 봉환되어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서울 신익희(申翼熙) 묘

신익희(1894년~1956년)3.1운동에 참여하고 중국으로 망명했다대한민국 임시헌법을 기초하였으며법무총장, 내무부장 등을 지냈다 해방 후초대 국회부의장, 제1~2대 국회의장이 되고이승만에 대항해 민주당을 창당하였으며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유세를 가던 중 심장마비로 죽었다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서울 조병옥(趙炳玉) 묘

조병옥 (1894년~1960년) 광주학생운동 탄압 규탄 민중대회를 열어 배후조종 혐의로 복역하고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복역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 경무부장이 되었으며 정부 수립 후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2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민주당 대표를 역임했으며 제4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급서했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유석 조병옥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고 이승만에 대책점에 서서 독재를 타도하려는 야당의 대표였으나 제주 4.3사건 당시 강경 진압을 주장해 무고한 사람들을 피해 입게한 책임자라는 비판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