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

서울현충원 - 박열(朴烈) 위패

답사객 2025. 4. 19. 09:00

박열

(1902년~1974년)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3.1운동에 참여하여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소쿠영어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에서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레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고 조봉암, 김약수 등과

흑도회를 창설하였다. 1922년 공산주의자들과

분리해 무정부주의자들과 풍뢰회를 조직하고

1923년에는 비밀결사인 불령사를 조직하였다

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조선인들이 학살

당할때 기타 잇키의 도움으로 피산하였으나

이틀 뒤에 보호 검속이라는 명분으로 체포되고

결국 치안경찰법 위반 혐의로 기소가 되었다

이때 취조에서 폭탄 구매 계획이 드러났는데

일본 경찰은 이것을 일본 황태자 결혼식 날

천황 부부를 암살하려 했다는 사건으로 과장,

날조하여 박열과 그의 애인 가네코 후미코를

재판에 세우게 된다. 결국 두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11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옥중에서 가네코 후미코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26년 가네코는 옥중에서

23세의 나이로 요절했고 박열은 22년 2개월을

복역하다 해방으로 1945년 10월에 석방되었다

이후 김구의 부탁으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유해 봉환을 책임졌으며 재일거류민단 단장으로

활동했고 영구 귀국해 서울에 머무르다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납북되어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