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운
(1884년~1947년)
어려서 하와이로 이민을 갔고 나중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때 안창호가 조직한
공립협회에 가입해 회원으로 활동했다
비슷한 시기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통감부
외교고문이었던 더럼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 지배가 한국에 유익하다'라는 발언을
하자 이에 크게 격분하며 거사를 결심했다
1908년 3월 23일 샌프란시스코 기차역에서
스티븐스를 기다리다 그가 나타나자 그를
향해 권총을 쏘았으나 불발되었고 이에
권총을 뒤집어 잡고 스티븐스의 얼굴을
그립으로 강타하며 몸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때 우연히 같은 목적으로 현장에 있던
장인환이 나타나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발사했는데 한 발이 전명운의 팔에
명중하였고 두 발이 스티븐스의 가슴에
명중하여 그를 암살하는데 성공한다
재판에서 전명운이 직접적인 범인이
아니었고 둘은 사전 공모도 없었기에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생전에 해방을 보았지만 생활고로
인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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