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

서울현충원 - 서재필(徐載弼) 묘

답사객 2024. 10. 2. 09:00

서재필

(1864년~1951년)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 인사들과

교류하며 개화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조련국 사관장을 지내고 있을 때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신정부의 병조참판 겸 후영영관에

임명되었으나 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자

주모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하지만 일본에서 외교문제로 이들을 냉대하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아예 미국 국적을 얻어

제이슨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갑오개혁 당시 역적 혐의가 풀렸고

박정양 내각의 외무협판에 임명되었으나

귀국하지 않았다가 1895년에 귀국하게 된다

귀국 후 국민의 계몽을 위해 신문 발간사업을

추친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는데 성공했고

이에 힘입어 개화세력들과 독립협회를

창설해 협회의 고문이 되어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자 이를

경계하던 수구파 정부에 의해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의료사업에 종사한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재산을 정리하여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고 잡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함과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를 전세계에 규탄하였다

그 후 상해 임시정부 구미위원장 자격으로

독립을 위한 언론 활동에 힘을 쏟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독립을 지원했다

해방 후 미군정이 실시되자 군정장관 하지의

요청으로 미군정 최고정무관으로 귀국했으나

얼마 안있어 정부가 수립되어 군정이 끝나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