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행위자 30

남양주 완순군(完順君) 묘

완순군 (1856년~1922년) 본래 선조의 아들 경창군의 후손으로 9대 종손 이신오의 아들이었으나 흥완군의 양자가 되어 고종과 4촌이 되었다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한성은행 은행장이 되고 궁내부대신, 종정원경 등을 지냈다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자 4대손에 해당되어 완순군에 봉해지고 보빙대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육군 부장이 되었다 대한제국을 방문한 요시히토 황태자를 순종, 영친왕 등과 함께 맞이하였다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조선귀족 후작에 봉해졌으며 은사공채 336.000엔을 받았다 중추원 찬의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했고 죽을때 경술국치에 대한 수치심으로 자신의 묘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 유언했다

경기도 2024.02.29

서울 김성근(金聲根) 묘

김성근 (1835년~1919년) 공조, 형조, 이조, 예조판서 등을 지내고 궁내부 특진관이 되었다 1900년 이후 의정부 참정, 탁지부대신을 지냈으며 일본으로 망명한 유길준을 체포하여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100원을 기부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경술국치가 일어나고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 자작의 작위와 5만원의 은사공채가 내려오자 이를 받는 등 친일 행보를 보였다

남양주 엄준원(嚴俊源) 묘

엄준원 (1855년~1938년) 엄진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엄진삼의 양자로 출계하여 양아들이 되고 순헌황귀비 엄씨의 동생이 된다 대한제국 시절 군부협판, 원수부 기록 총국장, 헌병 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순헌황귀비에게 조금의 내탕금을 얻어 진명여학교를 설립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진명여학교를 운영하며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사망할 때까지 연임하며 재직했고 그 밖에도 조선박람회 평의원, 조선나병예방협회 회원 등을 지내 훗날 친일반민족행위자에 규정되었다

경기도 2024.01.29

서울 장덕수(張德秀) / 박은혜(朴恩惠) 묘

장덕수 (1894년~1947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한청년당과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귀국했을 때 일본에 체포되어 하의도로 유배되었으나 여운형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여 부사장과 초대 주필을 지냈으며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고 난 후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대화숙 등의 친일 단체에 참여하고 내선일체에 대한 글을 쓰는 등 친일 활동을 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한국민주당의 정치부장, 외무부장을 지내며 수석총무 송진우가 암살되고 사실상 지도자가 되면서 미군정의 파트너로 활동하다가 제기동 자택 청설장을 찾아온 박광옥, 배희범에게 저격당해 암살당한다 박은혜..

서울 이광래(李光來) 묘

이광래 (1908년~1968년) 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극작가로 데뷔하였다 태평양 전쟁 시기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등의 작품을 출품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해방 후 극단 '민예'를 조직하여 좌익연극단체와 대항하며 민족예술을 지켰으며 여러 자리를 맡아 민족극의 기반을 다지고 많은 연기자들을 길러냈다

서울현충원 - 박정희(朴正熙) / 육영수(陸英修) 묘

박정희 (1917년~1979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중위로 활동하다 광복이 되었다 남조선국방경비대에 들어갔으나 남조선노동당에 입당해 활동하다 발각되어 죽을 뻔 하였고 백선엽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이로 인해 불명예 전역을 했었으나 6.25 전쟁이 일어나자 복직했으며 그 후 제5보병사단장, 제7보병사단장, 부산군수기지사령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지내다 5.16 군사 정변을 통해 집권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활동하다 육군 대장으로 전역하여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경제성장 정책 등으로 민심을 얻어 제6, 7대 대통령에도 당선되었으나 유신 헌법을 공포하며 제8대 대통령이 되어 독재 정권의 길을 열어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 제9대 대통령이 되어 임기를 수행하던..

서울현충원 2023.12.15

서울 변희용(卞熙瑢) / 박순천(朴順天) 묘

변희용(1894년~1966년)2.8독립선언에 참여했으며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을 지내고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이 되었다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장을역임하던 중 4.19 혁명이 일어나자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 교수 시위를주도했으며 성균관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박순천(1898년~1983년)3.1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었으며출옥 후 경성가정여숙 부교장을 지냈으나제자들에게 정신대에 지원할 것을 권하고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에 참여하는 등일제강점기 말에 친일 행보를 이어갔다해방 후 대한여자청년단 단장과 대한부인회회장 등을 지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데후에 5선까지 당선되고 이는 제22대 국회까지여성 국회의원 최다 당선 횟수였으나 2024년추미애 국회의원이 6선이 되며 기록이 깨졌다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후에 총..

서울 엄상섭(嚴詳燮) 묘

엄상섭 (1907년~1960년) 일제강점기 당시 광주지방법원검사국과 함흥지방법원검사국 검사를 지내는 등 사법계 친일 행적이 있다 해방 후 서울지방검찰청, 대검찰청 검사를 지내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제2공화국 헌법기초위원장을 지내던 중 갑작스레 사망하였다 (엄상섭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반성하는 행보를 보여 대표적인 친일 행적 반성 사례로 꼽힌다)

서울 현제명(玄濟明) 묘

현제명 (1903년~1960년) 연희전문학교에 음악 강사로 부임하고 미국 시카고음악연구원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나 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된 후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지지하는 노래를 작곡하고 친일 단체에 가입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초대 학장을 지냈으며 한국음악가협회를 창립하였다 (예전에 현제명의 를 좋아했었는데... 물론 이제는 아니다)

서울 서상일(徐相日) 묘

서상일(1887년~1962년)대구에서 비밀결사 달성친목회를조직하였으며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광복 후 한국민주당의 총무로 활동하였으며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후에 사회대중당 등을 창당하고제5대 민의원이 되었으나 5.16 군사 쿠데타와지병으로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하지만 후에 밝혀진 바로는 일제강점기 말에 조선임전보국단, 국민동원총진회 등에 참석한 친일 행위가 드러나기도 하여 현재 논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