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귀족 16

포천 청풍군(淸豊君) 묘

청풍군(1890년~1950년)이름은 이해승이다월산대군의 후손인 이건용의 아들이나후사 없이 사망했던 풍선군 이한용의사후 양자가 되며 가까운 황족이 되었다1904년 양할아버지 청안군이 사망하자누동궁 궁주가 되었으며 경술국치 이후조선귀족 후작 작위와 은사공채를 받았다해동은행 대주주, 일선산금 주식회사 이사등을 지냈으며 조선귀족회 회장을 지냈다조선 귀족 대표로 미나미 지로 총독에게육군, 해군 각각 1만원의 국방헌금을 내고조선인 징병제도를 보며 충성스러운 황국신민으로서 대동아공영의 지도자가 되게하려는 어버이의 심정이라며 찬양했다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평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징병령실시감사회 발기인을 지냈다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곧풀려났고 6.25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경기도 2024.09.09

남양주 박찬범(朴贊汎) 묘

박찬범(1917년~1986년)박영효의 손자로 아버지인 박일서는박영효보다 이른 1930년에 사망했다1939년 할아버지인 박영효가 사망하자조선귀족 후작 작위를 습작했으며동창광업주식회사 취체역에 선임되고1942년에는 대표취체역에 선임되었다의친왕의 3녀인 이해춘과 혼인하였으나훗날 이혼하여 묘에는 박찬범 홀로안장되어있으며 운현궁 궁주 이우의부인인 박찬주 여사의 남동생이 된다  (부모 박일서 내외 묘)

경기도 2024.08.04

남양주 영혜옹주(永惠翁主) / 박영효(朴泳孝) 묘

영혜옹주(1858년~1872년)조선 철종과 숙의 범씨의 딸로철종은 5남 6녀를 두었으나 모두요절하여 영혜옹주가 유일하게장성해 혼인까지 한 자녀이다1872년 박원양의 아들 박영효와혼인하였으나 3개월만에 사망하여후손을 얻지 못하였으며 참고로조선의 마지막 왕녀이다 박영효(1861년~1939년)박원양의 아들로 어린 시절 큰 형을따라 박규수의 사랑방에 출입하면서오경석, 유홍기 등에게 영향을 받았고김옥균, 서광범 등과 교류하였다1872년 철종의 왕녀인 영혜옹주와혼인하여 부마로 금릉위가 되었으나3개월만에 영혜옹주는 사망했다제3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조미수호조약 당시 최초로 태극기문양을 제작하여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1884년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 사람들과갑신정변을 일으켜 내각을 수립했으며전후영사 겸 좌포도대장이 ..

경기도 2024.08.03

남양주 조동윤(趙東潤) 묘

조동윤(1871년~1923년)신정왕후의 조카인 조영하의 아들로병조참판과 병조판서 대리를 지내고대한제국 선포 후에는 원수부 군무국장을거쳐 육군 참장으로서 군부협판을 지냈다그 후 원수부에서 여러 요직을 지내고궁내부특진관을 거쳐 육군무관학교장을지내고 배종무관장으로 영친왕의 일본유학을 수행하고 동궁무관장이 되었다1910년 육군 부장이 되었으나 얼마 안가경술국치가 일어나고 일본 정부로부터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수작 받고 1920년대한제국의 장교를 일본군으로 임용하는과정에서 육군 부장이었기에 일본 육군중장으로 임용되어 일본군인이 되었다

경기도 2024.05.23

아산 정낙용(鄭洛鎔) 묘

정낙용(1827년~1914년)삼도수군통제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거쳐병조참판이 되었으나 삼도수군통제사 시절저지른 부정 비리로 인해 귀양살이를 하였다후에 사면되어 형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지내고한성판윤, 시종원경을 거쳐 농상공부대신이되어 내각의 일원이 되었고 중추원 의장과궁내부특진관이 되는 등 여러 요직을 지냈다한일병합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으며경술국치 이후 일본에서 내려준 조선귀족 남작작위를 수작받았는데 이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밤을 새우며 주연을 배풀었다고 전해진다

충청남도 2024.05.20

고양 고희경(高羲敬) 묘

고희경(1873년~1934년)정미칠과 경술국적인 고영희의 아들로경술국치 이후 이왕직 사무관에 임명되어영친왕을 보좌하기 위해 일본에 거주하다귀국했으며 1916년 아버지 고영희가 죽자조선귀족 자작 작위를 수작 받았다가1920년 백작으로 승작되었고 아버지와마찬가지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을지내 유일하게 부자로 중추원 고문을 지냈다이외에도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는 등친일 활동을 하여 일본에서 편찬한에 수록되었다

경기도 2024.04.24

고양 고영희(高永喜) 묘

고영희 (1849년~191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수신사로 김기수가 일본으로 파견될 당시 수행원으로 함께 가서 일본 물정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 후 외부협판, 탁지부협판 등 여러 관직을 거치고 일본 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다 귀국 후 황해도관찰사, 경리원경을 거쳐 이완용 내각이 성립되자 탁지부대신이 되어 고종의 퇴위와 군대 해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에 동의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10년 어전회의에서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강요하였으며 이러한 공로로 경술국치 이후 조선귀족 자작에 봉해지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됐다 매국노 중에서 가장 고령으로 제일 먼저 죽었다

경기도 2024.04.23

고양 김정록(金正祿) 묘

김정록 (1907년~1982년) 조선귀족 남작 김춘희의 손자이며 김교신의 아들로 아버지가 사망하자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습작 받았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중국 유학 중이라 작위를 받지 않으면 낙인 찍힐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받았다고 해명했으며 습작 자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아 주위에서 그가 남작 신분임을 알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불기소 처분하고 풀려났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연구분야는 동양미학으로 시인 김지하가 존경하는 스승 중 한 명으로 꼽았으며 문화재청장 유홍준도 김정록의 제자이다

경기도 2024.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