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의병 2

서울현충원 - 이인영(李麟榮) 묘

이인영(1868년~1909년)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단발령까지 내려지자 유인석, 이강년 등과함께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제천의병에도참여했다가 훗날 해산했다. 그러다 1905년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다시 한 번 의병을일으키려 했으나 부친이 병석에 있어서뜻을 펼치지 못했다. 그 후 1907년에고종이 강제 퇴위 당하고 군대가 해산되자다시 의병을 일으켰으며 이은찬, 이구재 등이의병들을 모집해 본인을 찾아와 총대장을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아버지가 병석에 있어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결국 수락했다. 이에그치지 않고 전국에 있는 의병들에게 모일것을 촉구해 허위, 민긍호, 신돌석 등 각 도의의병장들이 모였고 그렇게 결성된 단체13도 창의군의 총대장이 되었다. 그렇게서울로의 진격 작전을 계획했으나 이러한중요한 시기에 부친상..

서울현충원 2025.01.14

서울현충원 - 신돌석(申乭石) 묘

신돌석 (1878년~1908년) 1895년 을미의병이 봉기하자 19세의 어린 나이로 의병을 이끌고 거사했으며 1905년 을사의병이 봉기하자 사람을 모아 다시 의병운동을 재개하였다 1907년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전국에서 의병들이 양주로 모여 13도창의군이 결성될 당시에 신돌석은 경상도 의병을 대표해 1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올라왔으나 그가 평민의병장이라는 이유로 참여시키지 않아 결국 경상도로 다시 돌아와 따로 의병 운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겨울이 되고 봄을 기약하며 부하 집에 은신하고 있었지만 이들 형제의 배신으로 인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