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10

서울 이유(李濡) 묘

이유(1645년~1721년)광평대군의 후손으로 경신환국 당시서인이 집권하자 승지로 발탁되었다그 후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등을 지내고갑술환국 후에는 평안도관찰사를 거쳐호조판서를 지냈다. 병조판서를 지낼 당시양역이정청이 설치되자 구관당상을겸임하며 양역변통문제를 담당하며양역 사무를 크게 정비하는데 일조했다이러한 공으로 우의정에 올랐으며 뒤이어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임명되었고도성 방어 강화를 주장하여 북한산성수축을 완료하였다. 영중추부사가 되고기로소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사후에경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시호 '혜정'을 받았다

포천 서문중(徐文重) 묘 석물

서문중(1634년~1709년)경상도관찰사, 호조참판, 예조참판을 거쳐공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기사환국당시 우참찬을 지내고 있었으나 남인에게밀려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게 되었으나갑술환국 당시 다시 병조판서로 복귀했다하지만 희빈장씨 및 남인 세력에 관해서온건론을 주장하다가 배척받게 되었다그 후 박세채의 건의로 다시 서용되어훈련대장,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역임하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서영의정을 지내며 소론의 대표 인물로활동하였다. 시호는 공숙(恭肅)이다 서문중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읍내리에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군사보호구역으로일반인들은 접근이 통제되는 곳이다봉분은 꽤 큰 편으로 호석이 둘러져 있고봉분 옆으로는 묘비가 있으며 앞으로는상석, 향로석 등이 있고 양 옆으로는망주석, 문인석, 무인석이 있..

경기도 2024.08.30

양주 남곤(南袞) 묘

남곤(1471년~1527년)성종 때 관직에 나가 여러 관직을역임하다 갑자사화 때 서변으로 유배당했다중종반정으로 풀려나 대사헌, 우참찬 등을거쳐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내면서승승장구 하다가 조광조 등 사림파에 의해소인으로 몰리자 심정 등과 기묘사화를일으켜 조광조, 김정 등 신진 사림파를숙청하고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말년에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자신의글로 인해 화를 입을까 염려하여 모든글을 마당에 놓고 불태웠으며 사후에'문경'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나 사림의탄핵을 받아 삭탈되었고 심정, 홍경주와함께 기묘삼흉으로 불리며 지탄받았다

경기도 2024.08.14

안산 김류(金瑬) 묘

김류(1571년~1648년)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김여물의 아들로광해군 때 북인들의 탄핵으로 쫓겨났다이귀, 신경진, 이괄 등과 반정을 모의하고대장에 추대되어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고 승평부원군에봉해졌으며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지내다 이괄의 난 당시 인조를 호종했으며정묘호란 당시에도 인조를 호종하였다정원대원군의 추숭과 관련해 반대하다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해 좌의정을거쳐 우의정을 지내고 영의정이 되었다심기원의 모역을 평정해 영국공신 1등순천부원군에 책봉되었으나 세자빈강씨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며사직했고 그 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경기도 2024.07.13

남양주 박원종(朴元宗) 묘

박원종(1467년~1510년)적개공신 평양군 박중선의 아들로연산군 재위 기간 동안 신임을 얻어여러 관직을 지냈으나 점차 왕의미움을 받았고 결국 삭직되었다이에 성희안, 류순정과 함께 반정을모의했고 1506년 중종반정을 일으켜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옹립하였다이 공으로 정국공신 1등이 되어 우의정이되고 평원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좌의정을거쳐 이과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다시정난공신 1등이 되어 영의정이 되었다후에 평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중종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무열이다

경기도 2024.07.02

남양주 김수흥(金壽興) 묘

김수흥 (1626년~1690년) 김광찬의 아들로 영의정 김수항의 형이지만 김광혁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대사간, 도승지,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영의정이 되었으나 예송논쟁으로 남인에게 공격 받고 현종이 죽자 양사의 탄핵으로 유배되었다 경신환국으로 다시 영의정이 되었으나 기사환국으로 다시 남인이 집권하자 유배되고 이듬 해 배소에서 죽었다

경기도 2023.12.19

남양주 김수항(金壽恒) 묘

김수항 (1629년~1689년) 김광찬의 아들로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치고 우의정을 지냈다 형인 영의정 김수흥이 갑인예송으로 쫓겨나자 대신 좌의정에 임명되었으며 경신환국이 일어나자 영의정이 되어 남인의 죄를 다스리고 송시열, 박세채 등을 불러들였으며 영의정을 8년 동안 지냈다 하지만 기사환국이 일어나 남인이 집권하자 탄핵되어 진도로 유배되고 사사되었다 1694년 신원이 복관되고 현종에 묘정에 배정됐다

경기도 2023.12.18

서울 상진(尙震) 묘

상진(1493년~1564년)1519년 문과 급제 후 여러 관직을거쳐 대사간, 형초참판을 지냈고경기도관찰사가 되어 민정을 잘 다스렸다그 후 형조판서, 한성판윤, 대사헌을지내고 공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내다가인종 즉위 후 윤원로와 결탁했다 하여경상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명종 즉위 후다시 형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냈고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내며 국정을총괄했다. 임꺽정의 난을 평정하는데일조했으며 말년에 기로소에 들어가고궤장을 하사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