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빈(1880년~1943년)일본으로 건너가 중앙대학 법학과를졸업하였고 돌아와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며1925년에는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냈다교장을 지내는 동안 국어연구에 몰두했으며보성전문학교와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조선어학'을 강의하는 등의 활동을 보였다1931년 사람들을 모아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고조선어학회의 [한글마춤범통일안]에 반대하며여러 논설들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이는간편해야 하는 언어가 복잡하고 혁신적이면일반대중에 녹아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서인데하지만 오히려 박승빈이 사회의 동조를얻지 못했고 결국 실의 속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