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옹주
(1858년~1872년)
조선 철종과 숙의 범씨의 딸로
철종은 5남 6녀를 두었으나 모두
요절하여 영혜옹주가 유일하게
장성해 혼인까지 한 자녀이다
1872년 박원양의 아들 박영효와
혼인하였으나 3개월만에 사망하여
후손을 얻지 못하였으며 참고로
조선의 마지막 왕녀이다
박영효
(1861년~1939년)
박원양의 아들로 어린 시절 큰 형을
따라 박규수의 사랑방에 출입하면서
오경석, 유홍기 등에게 영향을 받았고
김옥균, 서광범 등과 교류하였다
1872년 철종의 왕녀인 영혜옹주와
혼인하여 부마로 금릉위가 되었으나
3개월만에 영혜옹주는 사망했다
제3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조미수호조약 당시 최초로 태극기
문양을 제작하여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1884년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 사람들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내각을 수립했으며
전후영사 겸 좌포도대장이 되어 병권을
장악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삼일천하로
끝나게 되고 결국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일본에서 암살 위협에 시달리다가 1894년
귀국해 김홍집 내각에서 내부대신을
지내고 갑오개혁을 주도했으나 역모를
꾀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다시 망명하였다
1907년 특별사면을 받고 궁내부대신이
되어 고종의 강제 퇴위를 반대하다가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경술국치 이후에는
조선귀족 후작 작위와 은사공채 28만원을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는 등
일제에게 협력하였으며 조선귀족회 회장,
매일신보사 발기인, 조선사편수회 고문 등
수 많은 친일 단체에서 요직을 역임하였다
1926년 이완용이 사망하자 그의 후임으로
중추원 부의장이 되었으며 일본제국 의회
귀족원 의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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