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제3묘역 14

서울현충원 - 이철승(李哲承) 묘

이철승 (1922년~2016년) 제3대 국회의원 임기를 수행하던 중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자 가결을 선포한 최순주 국회부의장의 멱살을 잡았다 이후 민주당에 입당해 제4~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국회의원 신분으로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하였다 5.16 군사 정변 이후 신민당에 입당했으며 제7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갔으나 낮은 득표율을 받고 김대중 후보를 밀어주었다 제8~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제9대 국회에서 국회부의장을 지냈으며 신민당 총재 선출 전당대회에 출마했으나 김영삼에게 밀리자 김태촌의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사건을 사주하였다 제10/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7선 의원이 되었다

서울현충원 2024.01.12

서울현충원 - 강영훈(姜榮勳) 묘

강영훈 (1921년~2016년) 6.25 전쟁 당시 국방부 관리국장, 제3군단 부군단장 등을 지냈으며 전쟁이 끝나고 합동참모차장을 지냈다 제6군단장 시절 4.19 혁명을 맞았는데 당시 "전차부대를 출동시켜라"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 탱크로 학생들을 뭉개버리라는 거냐며 명령을 단호히 거부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장을 지내다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자 반대했으며 당시 졸업생인 전두환 대위가 육사 생도들을 이끌고 지지 퍼레이드를 하려 하자 이를 저지했으나 전두환이 이를 박정희에게 고자질하여 체포되었다 그 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노태우 정권 당시 국무총리를 지내며 분단 최초로 남북 총리회담을 성사시켰다

서울현충원 2024.01.11

서울현충원 - 서영훈(徐英勳) 묘

서영훈 (1920년~2017년) 대한적십자사에 들어가서 사무총장, 청소년적십자 부장 등을 지내고 그 밖에도 여러 활동을 하며 사회운동에 힘썼다 KBS 사장 겸 한국방송협회 회장이 되어 방송자유화를 위해 힘써 인기가 많았다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대표가 되었으며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하였으나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되어 당을 탈당하였다

서울현충원 2024.01.09

서울현충원 - 엄운규(嚴雲奎) 묘

엄운규 (1929년~2017년) 청도관 창설자 이원국에게 태권도를 배웠으며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태권도 9개관 대표 시범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기존의 발차기에서 자신의 체형에 맞게 기술을 창안했고 그것이 '이단 옆차기', '뒤돌려차기', '뒤돌아 옆차기' 이다 훗날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 국기원 원장, 대한태권도협회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서울현충원 2024.01.08

서울현충원 - 박태준(朴泰俊) 묘

박태준 (1927년~201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실장을 거쳐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대한중석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포항종합제철이 설립되자 초대 사장이 되어 10년 만에 55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대기업으로 키워내 '철강왕'이라 불린다 12.12 군사 반란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총 4선(11/13/14/15) 국회의원을 지내고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내기도 하였다 1992년 포항제철 회장직을 사임하고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지원하였으며 김대중이 당선되자 김종필에 이어 국무총리에 취임하였다 포스코의 명예회장이 되어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서울현충원 2024.01.05

서울현충원 - 최규식(崔圭植) 묘

최규식 (1932년~1968년) 1960년 박정희 당시 군수기지사령관의 부관으로 일했으며 5.16 군사 정변 이후 중앙정보부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경찰공무원이 되고 1967년에는 서울 종로경찰서장이 되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 무장공비 일당이 박정희 등 정부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세검정을 지나 창의문을 통과하려 할 때 검문에 걸렸고 보고를 받은 최규식은 현장에 출동해 직접 수하를 하였으나 무장공비들이 총격을 가했고 가장 앞에 있던 최규식은 순직하였다 사후 경무관으로 특진되고 태극무공훈장을 추서받았다

서울현충원 2024.01.03

서울현충원 - 전명세(全明世) 묘

전명세 (1931년~1971년) 육군항공대 조종사 출신으로 중령으로 예편하여 대한항공에 입사 후 수습 조종사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1971년 김상태에 의해 '대한항공 F27기'가 납치되어 북으로 비행하게 되자 침착하게 항공 보안관과 함께 권총으로 납치범을 사살하는데 성공했으나 납치범이 들고 있던 폭탄이 점화되자 몸을 던져 폭탄을 덮어 피해를 최소화했다 비행기는 고성군에 비상착륙하는데 성공했으나 치명상을 입은 전명세는 후송되던 중 사망했다 사후 정식 조종사로 추서되었다

서울현충원 202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