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서흠
(1572년~1652년)
목첨의 아들로 양구현감을 지내던 중
문묘낙서 사건의 책임을 지고 파직됐다
인조반정을 지지하여 좌승지가 되었고
정묘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했다
그 후 좌승지, 우승지,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가 당상관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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