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무
(1532년~1592년)
장례원 판결사를 지낼 당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구였던 본인 대신 아들인
이정립을 보내 선조를 호종하게 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왕과 국가의 안정을
바라며 매일 산대에 올라 북쪽을 향해
네 번 절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항복을 권유받지만 오히려
그들을 꾸짖었고 결국 순절했다. 시호는
충민이며 사후 회성군에 봉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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