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군
(1890년~1950년)
이름은 이해승이다
월산대군의 후손인 이건용의 아들이나
후사 없이 사망했던 풍선군 이한용의
사후 양자가 되며 가까운 황족이 되었다
1904년 양할아버지 청안군이 사망하자
누동궁 궁주가 되었으며 경술국치 이후
조선귀족 후작 작위와 은사공채를 받았다
해동은행 대주주, 일선산금 주식회사 이사
등을 지냈으며 조선귀족회 회장을 지냈다
조선 귀족 대표로 미나미 지로 총독에게
육군, 해군 각각 1만원의 국방헌금을 내고
조선인 징병제도를 보며 충성스러운 황국
신민으로서 대동아공영의 지도자가 되게
하려는 어버이의 심정이라며 찬양했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과
징병령실시감사회 발기인을 지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났고 6.25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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