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하
(1846년~1917년)
토문감계사로서 청나라측 대표와 함께
백두산에서 정계비와 토문강지계를 심사하며
국경 문제로 담화를 했으나 큰 견해 차이와
청나라의 강압적인 태도에 의해 실패했다
그 후 다시 한 번 토문감계사로 청나라와
회담을 가졌으나 청나라측이 조선의 입장을
거절하고 위협까지 하자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을 줄 수 없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청에게 굴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았다
김홍집 내각에서 내부협판을 지내고 관찰사
재직 시 을미의병이 일어났으나 민심이 좋아
무사하였으며 그 후 외부협판, 평안남도관찰사,
경상북도관찰사, 궁내부특진관, 장례원경 등을
지내다가 일진회가 '정합방론'을 주장하자
맹렬히 반대했으며 경술국치 당시에도
규장각제학으로 조약에 극렬히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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